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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5년 4호] 경영자독서모임: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발간일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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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독서모임]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황태연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 원고는 2015105 MBS강의를 바탕으로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과 산업정책연구원(IPS)에서 작성하였습니다..

 

보통 동서간에는 많은 문명적 교류를 했다고들 상상을 하지만 어떤 구체적인 교류를 했는지는 학자들도 잘 모르고 또 일반인들은 더 잘 모릅니다. 그런데 동아시아가 엄청 잘산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유럽의 15세기 정도였고 그때 주로 동아시아로부터 총포, 화약 또는 나침반, 도자기 온갖 것들이 들어가는데 주로 이제 물질적인 선진 이기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장사꾼들이 주로 왔다갔다했기 때문에 공자님의 책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주로 철학은 전해지지 않았고 이후에 전해지기 시작한 건 17세기 초 내지는 중반부터 공자가 알려지고 동아시아와 철학들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주로 선교사로 와가지고 전하는 것이라서 그 이전의 장사꾼들은 상인들은 철학을 모르니까 도외시했지만 이분들이 이제 선교를 해야 되니까 토착국가들의 철학이 뭐고, 사상이 뭔지에 대해서 아주 비상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마구 공부를 했고 공자와 예수님하고 말씀이 비슷한 건 자꾸 이제 찾아서 모으고 그래서 공자와 예수가 가는 길은 하나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분이 마테오리치인데 그래서 그 확신에 따라 천주실의라는 책을 씁니다. 동아시아에 많은 영향을 미쳐서 정다산도 읽었던 책입니다. 거꾸로 이분이 또 공자를 서양으로 번역하고 소개하고 하는 이제 그런 역할을 하고 그분이 소속해있던 예수의 많은, 예수의 소속, 선교사들은 주로 공자 경전들을 번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서양에서는 처음으로 신이 없는 도덕이라는 공자 철학을 처음 접했고 또, 왕을 뒤집어 엎어서 혁명을 할 수 있는 그런 정치사상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공자가 더 많이 애호돼서 번역됐고 맹자는 역성혁명이나 혁명사상이 들어있고 또 인간 본성에 입각한 신이 없는 도덕이론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일 나중에 번역됩니다. 책 자체가 거의 1687년이면은 공자경전은 다 번역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이 마지막 Francois Noel 라는 책은 1711년에 번역되는데 여기 처음으로 맹자가 들어있습니다. 맹자는 대단히 혁명적인 사상가로써 이들에게는 대단히 두려운, 아주 큰 공포 대상이었고 또 기독교를 잘못하면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도덕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물론 서양철학자들은 도덕철학을 말할 때 신을 말하거나 신학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이제 결정적으로 공맹철학의 영향이고 그 이전엔 신이 다 도덕을 계시해주고 신탁을 해준 걸로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공자철학 중에서 특히 맹자부분은 전복적인 그런 철학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면 철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 서양에는 하나의 근대를 만들려고 하는 거대한 사상투쟁 또는 사상운동이 있었는데 근대와 사상운동을 계몽주의라고 부릅니다. 계몽주의는 여기서 정의되듯이 1689년 영국 명예혁명으로부터 1777년 미국 독립혁명을 거쳐서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에 이르는 약 100년간에 일어난 근대화 사상운동이다. 100년간 근대화 사상운동으로써 계몽주의가 없었다면 유럽의 근대 또는 근대적 유럽은 없었습니다. 그 이전의 유럽은 기독교에 쩌든 귀신 나오는 유럽입니다. 영어로 HUNTED EUROP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ENCHANTED, 신들린 유럽이었습니다. 이 신들린 세계가 완전히 정체돼서 여기서 잠든 유럽이라고 제가 제목을 해놨지만 좀 완화시킨 것이고, 사실 신들린 유럽이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거기에서 신에서 벗어나서 좀 세속화되고 인간 위주의 삶이 전개되기 위해서 내부로부터는 어떤 철학적 동력도 에너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몽주의는 이제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바로 이 계몽주의가 유럽을 근대화시킨 이 계몽주의가 공자 경전에 번역서들을 읽고 충격으로부터 이 새로운 사상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공자 경전은 서양인들에게 서양철학자들에게 특히 종교전쟁을 30년을 하고 서로간의 수백만을 죽이고 나서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상당히 퍼졌습니다. 도대체 같은 신을 믿으면서 이렇게 서로 조금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한 살육을 해야 되느냐라는 그런 회의감 속에서 어떤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철학이 필요한 상황에서 공자경전이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공자경전이 바로 나오지는 않고 공자가 이 유럽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바로 SAMUEL PURCHAS라는 이 사람의 책을 통해서 입니다. PURCHAS HIS PILGRIMAGE. 그의 순례라는 책입니다. 1613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런던에서 공자를 뭐라고 소개 하냐 하면 중국 철학자는 COMPARABLE TO PLATO AND SENECA. PLATO SENECA에 비견할만한 중국의 철학자다라고 공자를 처음 소개합니다. 이게 유럽의 저작이나 책에 나타나는 최초의 공자 소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제일 떠받드는 게 그 당시에는 SENECA하고 PLATO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먹는 철학자가 중국에 있더라 이제 처음 소개를 한 것입니다. 물론 대단히 기독교적인 책입니다. 저 책은 기독교적 순례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제 프랑스의 NICOLAS TRIGAULT 입니다. 라틴어로 책이 돼있고 중국인들 사이에서의 기독교 포교라는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는 책입니다. 이것은 1615년에 나왔는데 여기에서 공자철학이 내용적으로 자세히 소개가 됩니다. 처음으로 이 책은 마테오리치가 원고를 썼고 마테오리치가 죽은 뒤에 이탈리아어로 번역됐던 것을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것을 마테오리치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쓰여진 것을 이 TRIGAULT라는 사람이 라틴어로 번역을 해서 처음 출판을 합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공자철학의 전모가 사람들에게 소개가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바로 공자 경전들이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무려 약 100년간 공자 경전은 유럽에서 스테디 셀러였고 동시에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공자를 모르는 사람은 유럽에서 지식인이 아니었고 철학자도 아니었고 정치가도 아니었던 시대가 약 100년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양인들은 많은 지식인들이 잊어버렸지 만은 우리 학자들만 추정하는 내용이지만, 이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전체를 계몽주의시대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나온 책은 1662년에 PROSPERO INTORCETTA라는 사람하고 DA COSTA라는 사람이 같이 쓴 SAPIENTIA SINICA, 중국 학문이라는 책입니다. 이거는 다른 말로 대학과 논어를 번역한 책입니다. 라틴어로, 처음으로, 그 다음에 나온 것은 1667년에 중용을 번역한 INTORCETTA의 책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또 INTORETTA 4인이 중국 철학자 공자, CONFUCIUS SINARUM PHILOSOPHUS, SIVE SCIENTIA SINENSIS 중국 철학자 공자 또는 중국 학문이라는 제목입니다. 이것은 1680년 파리에서 나왔고 바로 다음에 1688년에 불어로 번역되고 또 각국 영어로 다 번역이 됩니다. 이거는 대학 논어 중용을 번역했습니다. 사서 중에 딱 맹자를 빼먹었습니다. 일부러, 일부러 빼놓은 것입니다. 왜냐면은 분명히 이 책은 엄청난 화려한 장정을 가진 대단히 두꺼운 책입니다. 그리고 앞에 설명도 많고 소개도 많이 들어있는데 이것을 루이 14세가 돈을 댄 엄청난 화려한 장정입니다. 그런데 루이 14세가 돈을 댔는데 그 루이 14세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역성혁명 사상이 들어있는 맹자를 번역해가지고 미안했는지 신부들이 뺐습니다. 그러니까 18세기가 되기도 전에 다 번역이 된 것입니다. 18세기 초인 1711년에 Noel라는 사람이 이 고전 육서, 중국 고전 육서라는 책을 나타내는 그런 뜻입니다. 내는데 여기에 대학, 논어, 중용, 맹자, 효경, 소학이 번역이 됩니다. 처음으로 이제 맹자가 여기서 번역이 됩니다.

이것이 놀라울 정도로 익히면서 또 이것을 철학을 수용하려는 충격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체험 속에서 그들이 이제 처음 체험들을 드러내는데 JOHN WEBB이라는 사람은 영국의 국보적인 건축가이자 철학자였습니다. JOHN WEBB THE ANTIQUITY OF CHINA, 중국의 유구 성이라는 책을 냅니다. 책 나온 해가 1669년입니다. 바로 1662년에 공자 번역서들이 나오고 공자에 관련된 책이 나오자마자 이런 평가를 하게 됩니다. 내용은 이제 이 세상에 이성적인 결과로 만들어진 나라가 있다면 그건 중국이다. 중국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중국은 학자들이 통치한다. 우리 유럽처럼 칼 싸움하는 놈들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닌 그야말로 지식인들이 어떤 자격을 가지고 통치하는 나라다. 그런데 그런 이 나라를 영국도 배워야 된다는 말이 뒤에 나옵니다. 이게 1669년이니까 1688년에 명예혁명이 일어납니다. 명예혁명이나 이런 데에도 많이 영향을 줍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평가는 LABRUNE이라고 하는 프랑스 사람인데 그 아까 말했던 네 사람이 번역했던 그 책에 불어 판 번역자중에 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말하기를 불어니까 그냥 번역한 것으로 읽겠습니다. 이 철학자, 이것은 공자입니다. 이 철학자의 도덕은 무한히 숭고하지만, 동시에 간단하고, 깨치기 쉽고, 자연적 이성의 가장 순수한 원천으로부터 끌어온 것이다. 확언컨대, 신적 계시의 빛을 결한 그런 이성이 이처럼 잘 전개되어 나타난 적도, 이토록 강력하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뜻이 간단하지만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단 공자 책들은 누구나 읽어보면 다 쉽습니다. 깨치기 쉽다는 건 이 사람들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논어 읽어봐서 어려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까?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인데 깊이 파고 들어갈 때 이제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적 계시의 빛을 결한 그런 이성, 신의 계시나 신의 신탁 그런 선지자의 어떤 계시를 성경책에 받아가지고 그렇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없이 인간의 본성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철학이 이렇게 잘 전개되고 이렇게 강력히 나타난 적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이 말부터가 이미 서양철학의 신학적 도그마나 굴레를 탈피할 수 있는 상당히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를 더 들어보면 WILLIAM TEMPLE이라는 사람은 영국 찰스 2세 국왕의 최 측근 인물 중 하나였고 유럽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외교관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중국은 현실적인 공자철학이 실현된 나라인데 중국은 중국이 실은 그렇게까지 좋았는지 모르겠는데 엄청난 찬양입니다. 어떤 찬양이냐, 유럽의 이성의, 뒤에 상상적인 여러 주제들 그리고 그 중에 보자면 플라톤의 이상국가인 공화국이나 또는 저런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나 또는 크롬웰의 참모였던 해링턴의 OCEANAS라는 그 사람이 지은 이상국가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현대 작가들의 이상국가 구상보다도 더 좋은 더 실현된 나라 그 이상국가가 실현된 나라가 중국이라고 이렇게 극찬을 합니다. 이 극찬을 했다고 해서 중국이 그렇게 잘살았다고 내가 확신하지는 않고 그들이 이 중국에 대해서 탄복한 정도가 이 정도였다 이렇게 아시면 되겠습니다.

PIERRE POIVRE같은 사람은 1769 18세기 중 후반인데도 아직도 공자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불언데 우리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만약 중국제국의 법률이 모든 국가들의 법률이 될 수 있다면, 중국은 전 세계의 황홀한 미래상을 제공해 줄 것이다. 북경으로 가라! 숙명적 필멸자들 중 가장 위대한 분을 응시하라. 그 분은 참되고 완전한 하늘의 이미지이시다. 이제 그런 공자를 가르쳐서 이렇게 찬양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경전들이 번역 되가지고 유럽의 철학자나 지식인들에게 미친 임팩트가 이런 말로써 나타났기 때문에 몇 개를 제가 대표적인걸 몇 개를 모아왔습니다.

공자 철학의 서구철학에 대해서 했던 역할은 뭐냐 일단 크게는 두 개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구철학을 탈 희랍화시켰다.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완전히 벗겨내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뒤에 다룰 내용인데 유럽의 철학을 또는 유럽의 철학과 유럽을 유럽 자체를 탈 주술화시킵니다. 마술로부터, 마술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줍니다. 신들린 상태에서 신을, 신을 벗어나게 만들어준다.

우선 CHRISTIAN WOLFF는 공자님을 예수님 등급으로 올려놓고 실천철학 중국인의 실천철학이라는 그런 제목의 강연을 프레시아 왕립 대학에서 하다가 교수들에 의해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그래가지고 유럽에 이제 계몽의 총아로 떠오른 사람인데 나중에는 이제 프리디리히 2세가 이 사람을 다시 자기나라로 되돌리는데 첫 번째 자기 직무수행을 즉위를 하자마자 이제 이 사람을 모셔, 다시 모셔오는 걸 하게 되는데 그 바로 그 대상이 된 분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뭐라고 그랬느냐 독일어니까 영어로,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공자의 인생 이력은 공자가 그의 언행들의 서술을 완전히 제공한다면 그리스철학, 희랍철학으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온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도덕론과 정치학의 보고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희랍철학보다 더 낫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더 가면 이 BAUDEAU, NICOLAS BAUDEAU 같은 경우에는 언어는 더 격렬해집니다. 공자가 말하는 자연적 질서를 알지 못한 그리스 도시 국가에는 언제나 가령 정의와 선의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 국가들의 연대기는 인류 평화와 행복에 대한 부단한 공격의 연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은 그 르네상스시대에는 그렇게 희랍, 그리스를 찾고 로마를 찾고 그러던 유럽의 지성들이 공자를 읽고 나서는 그리스를 다 내던지고 버리는 그리고 공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격렬한 희랍비난, 그리스 비난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다음에 QUESNAY같은 경우에는 QUESNAY는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 모든 문답들은 모두 다 덕성, 선한 일, 훌륭한 통치의 방법에 대해 말한다. 이 어록 집은 이것은 논어입니다. 논어에 대해서 말한 것이니까, 이 논어는 그리스 7현을 능가하는 원리와 도덕적 명제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당시 그리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없으면 또는 성경책이 없으면 아무 철학도 하지 못했던 유럽사람들에게 처음으로 그 사람들 없이도 철학이 가능하고 성경책 없이도 인간의 도덕과 인간의 국가철학이 가능하다라는 걸 알려줬고 희랍으로부터 벗어난다고 그래서 공자철학, 서구철학을 탈 희랍화하다. 이렇게 한번 제목을 붙여봤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큰 철학적인 큰 역할은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공자, 신들린 유럽을 탈 주술화하다. 탈 주술화 한다는 것, 주술화됐다는 것, 마법에 걸렸다는 뜻입니다. 신들렸다는 이야기인데 이 신들린 사람이나 마법에 걸린 사람을 마법을 풀어줬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가, 신의 쩌든 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사회는 이제 이슬람 국가 같은 경우 보면은 그 사람들 아무리 말해도 각성이 안됩니다. 영어로 dissenting라는 말은 각성시키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처럼 기본적으로 신을 깔고 있지 않고 신을 멀리 주변화시킨 철학입니다. 그 대표적인 명제들을 공자 논어에서 보면 그래서 공자는 현세주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未能事人 焉能事鬼, 未知生, 焉知死, 제자가 귀신을 섬기는 거에 대해서 물으니까 그 제자에 대해서 공자가 답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섬기기도 잘 못하는데 귀신을 잘 섬기겠느냐, 사람 섬기기를 먼저 잘해라 이런 뜻입니다. 그 다음에 죽음에 대해서 물으니까 未知生 삶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섬기기를 더 애쓰고 삶을 먼저 죽음보다 알려고 해라.

그 다음에는 논어에 나온 말인 不言怪力亂神. 공자는 괴기스러운 거나 힘으로 뭘 하는 거나 또는 난적 같은 이야기나 신에 대해서는 말씀을 잘 안 하셨다 이런 뜻입니다. 그거 말하지 않고도 철학이 가능하고 도덕철학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말을 찾고 하는 것은 너무 형이상학화시키고 쓸 때 없는 논쟁을 공리공담(空理空談)을 자꾸 만들어내니까 그걸 멀리 했던 것입니다. 물론 제사를 안 지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사를 지내면 되지 제사 가지고 논쟁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사람들은 2500년 동안 현실정치를 하거나 현실적인 삶을 살아갈 때 농사를 지을 때는 대단히 현세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쩌다 한번 명절이 되거나 제사 지낼 때만 신적인 분위기에 들어갔었다. 이런 생활은 유신론, 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의 그 논쟁을 대단히 가볍게 만들고 또 있든 없든 별로 중요치 않게 만듭니다.

유럽에서는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심지어 18세기 후반까지 미라보 같은 철학자도 무신론적인 색채를 풍겼다는 이유로 6개월 정도 감옥살이를 할 정도로 그런 종교의 자유도 없었고 학문의 자유도 없었던 나라입니다. 유럽이, 그런 나라에 이런 철학이 던져진 것입니다. 던져졌는데 그 충격은 어떻게 나타나냐?

또 그 다음에 도덕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의 계시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너처럼 사랑하라고 성경 계시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계시를 안 했으면 사랑하지 않을 것인지, 공자철학에 당연히 인간은 그런 사랑을 본성으로 하게 돼있으니까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의 계시가 없으면 서양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이제 철학자들이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네가 너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라 라는 말은 네가 너를 사랑하라 라는 말은 안 하지 않았습니까? 명령어로, 그러니까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명령인데 비유가 너를 네가 사랑하듯이 사랑하라 라는 이야기는 적어도 이 신의 계시 안에도 신의 계시든, 명령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자기자신을 사랑한다라는 걸 깔고 있습니다. 이미 본성을 깔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철학자들로써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고 회의를 하고 있는 차에 공자철학에 접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적 본성을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고 그것을 잘 기르고 발전시키면 우린 충분히 도덕생활을 할 수 있고 또 학문적으로 도덕철학도 구축할 수 있고 또 충분히 지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런 철학을 처음 접하는데 서양은 지금도 어떤 흔적이 남아 있냐 하면 무엇이 도덕행위인지 모릅니다. 용기가 도덕인가, 용기 있는 행위가 도덕적인 행위인가, 플라톤부터 헤겔, 칸트에 이르기까지 논쟁을 합니다. 물론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용기가 도덕이라고 그랬습니다. 데이비드 흄은 그건 단호히 도덕이 아니라고 합니다. 용감한 것이 도덕이냐, 전쟁할 때 무용을 자랑하는 게 무슨 도덕이냐 그건 싸움 잘하는 거지, 현명한 것이 또 도덕이냐, 아니냐, 엄청 논쟁을 합니다. 무엇이 도덕인지를 잘 모릅니다. 도덕과 비도덕적 행위, 먹고 살려고 경쟁을 하는 것은 그거는 도덕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 경계가 서양 도덕철학에서는 신이 명령을 하지 않은 한에서는 경계가 모호했습니다.

그런데 공맹철학에서는 분명하게 동정심, 측은지심에 기초하거나 정의감, 즉 수호지심에 기초하거나 아니면 동정심에 기초한 이 세가지 감정에 기초한 인간의 행위는 도덕적 행위라고 그랬습니다. 나머지 감정에 기초한 건 도덕적 행위가 아닙니다. 개념적으로 명확합니다. 그러니까 가령 나라의 임금이 치욕을 당하거나 또는 국가가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된다. 그 시민은 죽음을 목숨을 걸고 싸워서 나라를 되찾거나 임금을 치욕으로부터, 설욕을 시켜야 된다 이런 뜻입니다. 대단히 고상한 뜻입니다. 그것 조차도 공맹철학에서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공동체의 사람의 식구를 누가 건드리면 방어하려고 들고 한편으로 움직이고 그 공동체를 대표하는 수장에 대해서는 수장에 대해서는 깍듯이 공정하고 그 수장의 치욕을, 자기의 치욕으로 느끼고 방어하려고 듭니다. 인간의 기본 감정이고 그건 동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인간한테 사나운 늑대도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회적 동물들은 늑대의 어떤 식구 멤버에 대해서 건드리면 집단방어를 합니다. 그리고 그 늑대 대장을 건드리면 모조리 같이 달려듭니다. 그러한 나름대로의 공동소속감과 또 그런 공정심을, 자기 수장에 대한 공정심을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더 강렬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강렬한 인간감정의 표현이 아까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는 것이라는 고상한 말로 나타날 뿐이지 실은 따져보면 인간의 본성이 들어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이야기도 실은 본성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런 철학에 기초한 공자철학은 신의 신탁이나 계시에 근거한 유럽의 도덕철학에 비해서 종교와 신이 할 역할이 없습니다. 이 공자철학의 확산은 또는 계몽, 철학자들에 의한 수용은 신과 성직자들을 실업자 만들기 딱 좋았습니다. 유럽이 그때부터 신을 믿는 사람 숫자가 줄어들고 기독교인들 숫자도 줄어들면서 세속화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와 같은 유럽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신들려가지고 살 수가 없는 조금만 교리에 어긋나는 소리를 하면 목을 내놔야 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일상생활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볼테르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제 민족의 도덕과 정신에 관한 에세이라는 책에서 1756년에 썼습니다. 유럽을 이게 공자철학이 엄청나게 탈 주술화시키고 세속화시켜 줬기 때문에 그 특징을 묘사를 CONFUCIUS IS NOT APROPHET, 공자는 예언가가 아니다. 예수가 예언가나 선지자처럼 굴었고, 마호메트도 그랬고 소크라테스도 그랬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다. AND SAYS MOTHING REVELATORY. 그리고 어떤 계시적인 것도 말하지 않았다. 어떤 그런 신탁 같은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HE WROTE ONLY AS SAGE. 그는 오로지 현자로써 글을 썼고 현자로써만 글을 썼고 AND THE CHINESE RESPECT HIM ONLY AS SAGE, TOO. 그리고 중국인들도 공자를 오로지 현자로써만 존경한다. 이 중국의 특징을 공자철학에 의한 공자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입니다.

맹자는 더 선명하게 이런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惻隱之心, 羞惡之心, 恭敬之心에 기초한 도덕이론을 전개한 철학자입니다. 이 공맹의 영향에서 계몽주의적 도덕철학이 탄생을 했는데 SHAFTESBURY라고 하는 영국 철학자가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유럽 도덕철학에 미치게 되는데 이 사람이 AN INQUIRY CONCERNING VIRTUE AND MERIT, 그러니까 미덕과 그 가치에 관한 탐구라는 책을 냅니다. 여기서 맹자의 시비지심 개념을 수용합니다.

시비지심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가 도덕적인 행위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선인지 악인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감각입니다. 도덕감각이라고 합니다. 도덕감각을 시비감각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입니다. SHAFTESBURY의 도덕철학을 받아들여서 영국과 스코틀랜드 모럴리스트들이 나타나는데, 바로 이 사람들이 FRANCIS HUTCHESON, DAVID HUME, ADAM SMITH, CHARLES DARWIN 오늘날에 이제 유럽의 철학은 전부 이제 도덕감각의 철학으로 도덕이론이 많이 정리돼있고 가장 현대적인 철학은 이것으로 되겠습니다.

실은 이들은 이어져 내려오니까 공자철학인지 몰랐습니다. SHAFTESBURY는 정확히 공맹철학을 자기는 수용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DARWIN까지 이르면 이제 오리진이 어딘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DARWIN은 정확합니다. 도덕감각을 논쟁했고 도덕감각이 이 사람의 관심은 어떻게 해서 인간에게 그 진화과정을 통해서 생겨났는가 이것을 연구하는데 초점을 맞췄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도덕혁명의 서구 전체는 신과 사제의 마수로부터 처음으로 해방되게 이릅니다. 그러면서 근대화, 현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현대화가, 그런데 MAX WEBER가 어떤 말을 했냐 하면 1920년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든 유럽이 공자철학으로부터 탄생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든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오직 서양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망상한 전통사회의 탈 주술화와 세속화, 독일어로 ENTZAUBERUNG & SAKULARISIERUNG라고 그럽니다. 실은 이게 서양에서만 가능하다고 그랬는데 실은 아주 멀고 먼 동양에서 온 공자철학의 영향에 의해서만 실은 이 세속화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도 서양사람들 별로 교회 안 다닙니다. 제가 독일에서 공부했는데 성당이나 교회는 다 텅텅 비어있었고 디스코 장으로 많이, 술집으로 많이 임대되어 있었습니다. 독일의 기독교 신도 율은 30% 노조조직률하고 비슷합니다. 그 정도까지 세속화되면서 신을 가지고 죽이고 살리고 하는 세상이 끝나게 된 게 이제 공자의 덕이었다 이런 뜻입니다.

그 다음엔 서양의 그러면 서양을 근대화시킨 어떤 제도가 있어야 될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특징적인 제도들이 있습니다. 또는 특징적인 어떤 사상이 있습니다. 우선 자유, 평등, 이런 것들은 과연 어디서 온 것 인가. 서양의 어떤 철학들을 봐도 그런 자유나 평등은 없습니다. 서양철학 안에서는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근대 자유 이념은 무엇이냐 하면 무슨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근대 자유 이념이 아니고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국가의 강제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국가가 우리를 간섭하지만 않으면 좋은 것인데 이게 근대적인 의미의 소극적인 자유입니다. 나중에 사회주의자들이 프리덤2 라고 하는 소극적 자유를 말하게 되려면 한 150, 200년 이상 와야만 말하는 것입니다.

근대화가 될 때 자유개념은 근대 국가와 국가의 강제와 간섭으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국가와 국가의 강제와 간섭이 없는 것, 서양철학자들은 이 자유개념을 공자의 無爲而治와 則君自治의 개념에서 받아들입니다. 無爲而治는 노자의 無爲自然과 다른 개념입니다. 노자는 하늘과 자연을 너무 절대적으로 여겨서 그냥 놔두면 다 된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공맹철학의 특징은 그렇게 서양이 생각하듯이 신이나 하늘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신과 하늘은 인간에 비하면 엄청나게 유리한 거지만 그래도 실수한다고 봤습니다. 장애인을 누가 만드냐, 하늘이 만든다. 고치기는 누가 고치냐, 사람이 고칩니다. 신인상조, 신과 인간이 서로 돕지 않으면 이 천지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물론 하는 일은 신이나 하늘이 훨씬 더 8~90%를 많이 하지만 인간도 1~20%의 기여를 해야 한다. 그래서 無爲自然을 말한 게 아니라 공자는 無爲而治를 말했습니다. 無爲라는 말은 爲자는 할 위 자가 아니라 또 깊이 보시면 뜻에 뭐가 있냐 하면 누구를 시키는 뜻에서의 위자 입니다. 無爲란 하게 함이 없이 다스린다. 하게함에 없이 놔뒀는데 잘 되면 놔두고 잘못되는 것이 있으면 그때는 개입해서 다스린다.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지 개입을 없애는 건 아닙니다. 그 점에서 이제 無爲自然과는 다릅니다. 그렇지만 無爲而治는 90%는 노자와 통할 수 있는 그런 개념입니다.

則君自治란 임금을 표준으로 해서 표준 삼아서 백성이 自治한다는 뜻입니다. 그니까 임금은 그냥 하늘에 떠있는 기준일 뿐이고 백성들이 알아서 하는 정치개념이 예기에 나오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에서 자유개념을 그대로 처음 접하게 됩니다. 모든 건 군주가 마음대로 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절대왕정, 또는 왕권신수설의 사회를 살다가 이 개념을 처음 접합니다. 그래서 無爲는 여기서 무작위가 아니라 강제와 제한 또는 간섭의 부재를 뜻하는데 프랑스 계몽철학자들은 이 無爲를 無爲를 LAISSEZ-FAIRE로 번역을 했습니다. LAISSEZ-FAIRE는 또 자유 방임으로 번역을 합니다. 無爲를 자유방임으로 번역을 하면서 근대적인 유럽의 자유개념이 나옵니다. 옛날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유는 노예 소유주만이 자유입니다. 노예 소유주 자유는 여기서 노예는 자유가 없습니다. 노예 소유주는 그런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노예 소유주의 자유가 아니라 근대적인 자유는 국가의 강제와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뜻이기 때문에 근대적인 자유는 처음으로 공자경전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두 번째 평등개념도 근대적인 평등이념은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고 누구나 똑같이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유의 개념을 말하고 있지만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거니까 평등하게 자유롭다는 이야기고 그래서 이 JEAN-JACQUES ROUSSEAU MAN IS BORN FREE 사회계약론의 첫 구절입니다. THOMAS JEFFERSON의 독립선언문 서두에는 ALL MEN ARE CREATED EQUAL.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이 관념은 서양에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관념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ANFREE하고 태어날 때부터 다 ANEQUAL하게 태어난 걸로 생각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 있고 태어날 때부터 평민이 있고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자스럽고 불평등하게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들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 인권선언입니다. 프랑스의, 1조는 MEN ARE BORN, AND ALWAYS CONTINUE. FREE AND EQUAL IN RESPECT OF THEIR RIGHTS. 사람들은 그들의 권리의 관점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다. 두 개를 합친 것입니다. FREE AND EQUAL, 평등하고, 평등하게 태어나고 늘 그렇게 지속돼서 남아있었던 것이다. SOCIAL DISTINCTIONS, THEREFORE, 그러므로 사회적 구별, 차별은 오로지 공적 공리성에만 기초해야 된다. 만약 혹시 인간들간의 차별을 만든다면 그것은 공리성이 증대되는 방향에서만 그게 차별이 가능하지 만약에 국가 관리가 된다면 국가 관리는 리더십을 가져야 되니깐 시키면 적어도 들어줘야 됩니다. 그 관리의 지위에서 행사하는 그런 것의 경우에만 차별을 인정한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게 완전한 표절입니다. 서양의 루소의 테제와 미국독립선언, 그리고 프랑스인권선언의 첫 테제는 예기의 天下無生而貴者也, 예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천하에 날 때부터 귀한 놈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모조리 다 그냥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소리입니다. 그 다음에 LOUIS-DANIEL LE COMTE가 중국은 송나라 중반부터 양반, 상놈이 없는 사회를 살았습니다. 그러기를 수 백 년을 살았기 때문에 조선에 엄청난 압박을 줬습니다. 조선은 양반, 상놈이 있는 사회니깐 중국을 본 따라서 뒤집어엎으려고 하는 그런 동학세력이나 또는 정여립 세력들 때문에 조선왕조는 힘들었지만 중국은 힘들 것도 없었습니다. 무려 이미 송나라 중반부터 그런 제도였는데 그걸 신사제도라고 합니다.

신사제도를 설명할 때 LE COMTE라는 이 신부가 대단히 유명한 책을 썼는데 그 책이 이제 중국의 현재상태에 대한 새로운 메모화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서 NOBILITY IS MEVER HEREDITARY 귀족은 결코 세습적이지 않다. 중국에서, 일대의 하나기 때문에 과거의 시험에 합격한 놈만 그 특권을 병역특권, 면제특권, 또는 세금면제특권을 얻고 공무를 수행할 때만, 공무 수행하지 않으면 그런 특권도 없습니다. 아들은 세습되느냐, 그 세습되지 않고 또 시험 봐야 됩니다. 조선은 어땠느냐, 한번 과거에 합격하면 사대 조에 과거에 한번 합격해서 관직을 가졌습니다. 사대 조 밑에까지 다 양반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더 길어져 가지고 400년 전에 한번 과거시험 됐으면 그 뒤에도 양반으로 갔습니다. 그것을 사대부제도라고 합니다. 중국은 신사제도와 사대부제도의 그 차이입니다. 세습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런데 이것을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THERE ANY DISTINCTION 어떤 차별도 그 인민의 자제들간에는 없었다. 어떤 경우를 제외하고는, SAVING WHAT THE OFFICES WHICH THEY EXECUTE MAKES, 그들이 수행하는 관직이 만드는 것, 만드는 차별 외에는 어떤 차별도 인정되지 않았다. 오늘날도 말하자면 지금 국가 공무원이 지시를 하는 거니깐 차별은 있지만 그게 공익을 증가시키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사실상 거의 프랑스 인권선언에 첫 1조는 옮겨 넣다시피 한 것입니다. 이런 평등개념도 동아시아 공자 철학으로부터 사실상 전해진 것이다.

그 다음에 신분해방, 보통교육, 3단계 학교제도. 신분해방은 아까 말한 대로 양반, 상놈이 없는 사회여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 거기는 혈통귀족사회기 때문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거였습니다. 신분해방이 뭐냐 하면 세습귀족을 부정하는 중국의 紳士制度로부터 가져 왔고 또 보통교육이념은 대학의 보통교육이란, 누구나 다 배워야 되고 누구나 다 가르쳐야 되는 것을 국가 이념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학이야 누구나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自天子以至於庶人,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壹是皆以脩身爲本, 하나같이 다, 수신을 본으로 삼는다. 수신은 EDUACTION이라는 뜻입니다. 교육을 본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천자도 배워야 되고 일반 서민도 배워야 된다는 사상을 2500년도부터 동아시아는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많은 경우 실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논어에는 有敎無類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그러니까 상놈도 배울 수 있고 귀한 사람도 배울 수 있다. 이런 관념이 너무 굳어있어서 조선시대에도 그런 사대부 나라였지만 수도 없이 서민자제도 과거시험을 봐야 된다는 논리로 싸우고 또 서민자제도 서민들도 꽤나 많이 들어갑니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과거시험을 볼 수 있는 자유가 있었고 향교에도 있었다. 향교에 이제 향교시험이 있었고 대단히 어렵고 그랬습니다. 향교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중고등학교, 성균관이 이제 대학인데 향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본인의 세금과 병역이 면제가 되고 유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 다음부터, 면제가 되고 아버지의 병역과 세금이 면제가 됐습니다. 아들 잘 두면 아버지까지 이제 잘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덩어리를 한 마지기씩 줬습니다. 그걸 갈아서 학비로 쓰라고, 성균관에 합격하면 땅덩이만 준 게 아니라 노비를 한 명씩 줬습니다. 그 다음에 용돈도 줬습니다. 그리고 무상교육이고 무상숙식이었습니다. 먹고 자고 다 거기서 했습니다. 그런 교육복지에서는 완벽했기 때문에 오늘날 어떤 국가도 아직 그 수준에 복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영국 같은 나라든 스웨덴 같은 나라도, 평등교육입니다. 보통교육, 평등교육을 우리가 이제 universal education 라고 그러는데 이것을 배워왔다. 이것은 여러 증거에 의해서 입증할 수 있습니다. 수 없는 자료에 의해서 서양의 보통교육 그리고 3단계 교육 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라는 이 3단계 교육제도도 서당, 향교, 대학 또는 태학이라고 있습니다. 제도로부터 가져온 것입니다. 얼마든지 증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이 관심 있을 자유시장경제개념입니다. 서양은 시장개념이 없었습니다. 시장은 모조리 나누어져 있어서 시장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national market 이란 게 없어서 프랑스의 한 프로방스에서 포도가 대풍이 되어서 포도주가 거의 헐값이 되더라도 그 다른 프로방스로 이 포도를 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쪽은 엄청나게 비싸고 여기는 헐값이고 이런 상황이 계속됩니다. 장사를 하는 것에 대한 기독교적인 적대감, 경멸, 이런 게 너무 세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대단히 지위가 낮고 아주 국가의 마치 해충인 것처럼 취급을 오랜 세월을 받아왔습니다.

상인을 적대하고 이자 받는걸 경멸하는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시장경제가 이윤과 이익을 추구하는 또 이자를 받는 그런 은행 업이 발달할 수 있었는가, 그 자체가 역사적 의문사항입니다. 그런데 바로 공맹철학과 사마천으로부터 시장경제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우선 케네는 맹자와 사마천의 무위시장론,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시장입니다. 요새말로는 자유시장인데 무위시장을 자유방임시장으로 번역을 해서 그걸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농번주의로부터 중농주의를 발전시킵니다. 그래서 케네의 경제이론은 자유시장론적 중농주의경제학입니다. 농업에서만 생산성이 나온다는 그런 의미에서 중농주의를 Physiocracy라고 하는 이론을 발달시켰습니다. 아담스미스는 케네와 대단히 절친한 학자적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파리에서 절친한 아담스미스가 케네로부터 많은 걸 배우고 케네를 계승해서 바로 자유 시장의 일반 이론을 전개하여 일반이론을 전개한 책이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는 국부론 입니다. 국부론은 두꺼워서 잘 안 읽어봐서 그러지 중국 시장경제 예찬론입니다. 사실상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라고 세 번이나 거듭 칭찬을 합니다. 그러면서 영국도 이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 중국만큼 17, 18세기에는 중국이 훨씬 잘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유시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시장, 그래서 케네가 쓴 공맹의 自然之道 자연의 도입니다. 또는 사마천의 自然之驗 사마천이 뭐라고 그러냐 하면 물가가 비싸지면 싸질 증후고 물가가 싸면 비싸질 증후라고 그랬습니다. 저절로 가격 법칙에 의해서 수요와 공급이 조정된다는 조절된다는 자연적 조절이 된다라는 거를 알았고 그리고 가장 명확한 공식으로 표현했던 사람이 사마천입니다. 그 대목은 다음에 사기열전을 한다고 그러는데 제일 보면 나중에 화식열전이 있습니다. 중국의 부자들을 다룬 그런 열전을 보면은 거기에 명확하게 나와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케네가 ORDRE NATURELLE라고 자연적 질서라고 하는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번역을 아담스미스는 NATURAL WISDOM 자연적 지혜, 또는 INVISIBLE HAND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것을 사실 아무 각주를 안 달아서 그렇지 이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은 케네와 공자와 맹자와 사마천 표절 책입니다, 표절 책. 중국경제에 대한 예찬서이자 표절 책입니다.

사실상 자유시장경제 이론은 동아시아이론을 발전시켜서 나왔다. 중국 역대에서 역대 정권 내내 그런 법과 사상가들은 끊임없이 전매, 소금전매, 무슨 술 전매, 철 전매, 이 전매를 계속 늘려서 국가독점을 늘리려고 한 반면에 유가들은 유학자들은 끊임없이 자유시장을 주장했습니다. 2500년 동안 두 전통하고 커다란 대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시장에 대해서 조선시대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유교국가라고 유교는 광 팔아먹듯이 많이 팔아먹지만 실제로 그렇게 유교적인 데는 별로 없고 차라리 공자님 배우기보다는 주자나 성리학을 많이 받든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사람들 여기 계신 분들은 내가 볼 때 8~90정도 그럴 거라고 똑같이 그러는데 아마 성리학적 그런 사고를 공자님 말씀으로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자님과 성리학자는 사실 적대적입니다. 모든 면에서 적대적인데 공자는 감정을 중시하는데 성리학자는 맨날 이기, 어쩌고 이성을 중시합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철학자라서 서양에서 공자를 받아들일 때는 성리학은 일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리학은 공자철학을 위조했다고 공개적으로 마테오리치도 선언하고 이것은 공자가 아니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중국의 한문학파는 한나라 시대의 유학을 지향하는 그런 학파입니다. 그 학파에서는 청나라 말기에 만약에 공자님이 다시 태어난다면 성리학자는 안되고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극언을 한 구절들도 있고 그럽니다. 그건 이제 마테오리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음은 관료행정 막스 베버가 그렇게 찬양해 마지 않았고 서부에만 발전됐다고 관료체제가 그랬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실은 관료체제는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관료, 관료체제, 다 동아시아로부터 건너간 것입니다. 막스 베버가 얼마나 책을 덜 읽고 문명을 공부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학자 대부분들은 막스 베버가 학문의 대가인, 대부나 되는 것처럼 그렇게 받들어 모시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복지국가도 마찬가지로 시장만이 아니라 복지국가도 동아시아로부터 가져간 것이다. 서양에서 Christian Wolf는 관방학이라는 cameralism라는 이름으로 관료행정체제를 발전시켰는데 성적주의적인 관료제와 과거시험 등용 제, 서양에서 처음으로 시험을 봐서 관리를 뽑는 제도가 만들어집니다. 그 이전에는 뭐였느냐, 칼 싸움 잘하는 놈 뽑거나 아니면 돈 주고 샀습니다. 모든 관직을, 매관매직이 일반화 되어있었습니다. 그 매관매직의 풍습을 끊고 스포일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그걸 끊고 시험 봐서 관료를 처음으로 독일에서 뽑아서 과거시험 치르듯이 치러서 이제 만들어 냅니다. 나중에 관방학은 cameralism은 행정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불러지게 됩니다.

경호국가라는 POLIZEISTAAT 이것은 양면이나 교면, 백성을 국가가 먹여 살리고 백성을 교화시키고 문화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국가의 임무라고 국가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한 게 공맹철학입니다. 그런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국가 학에 비해서 어떻게 다른 것이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먹고 사는 문제는 지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가르치는 교육의 문제는 통치자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일반 백성은 안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 국가를 이제 야경국가라고 나중에 아주 호되게 비판을 하는데 그게 일반화 돼서 유럽에서는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가라는 것은 모름지기 양민과 교민이 핵심적인 것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다 라는 게 공자철학입니다. 공자님이 제자가 족 식, 풍부하게 먹고 족 병, 병력이 강성하고 그리고 백성의 믿음, 이 세가지 중에 세가지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 중에 하나씩 털기 시작하면 뭘 먼저 털겠습니까? 그러니까 족 병을 먼저 털겠다. 군대는 조금 약해도 괜찮다. 백성이 사는 데는 지장 없다. 그 다음에 그 중에 또 뭘 털겠습니까 그러니까 먹고 사는 문제를 텁니다. 왜냐, 이게 풍년 들고 흉년 들고는 왔다 갔다 해서 굶어 죽는 일은 예로부터 있었던 일이라. 그런데 백성이, 백성이 서로 믿지 않거나 나라를 믿지 않으면 나라가 아예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민심, 백성의 믿음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 앞에 순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군사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게 먹고 사는 문제라고 일단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먹고 사는 문제를 그런 두 번째 사항으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건 백성이 알아서 지들이 먹고 사는 것입니다. 국가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전통이 아담스미스의 국부론까지도 이어집니다. 그냥 알아서 먹고 사는 문제, 그러니까 복지국가 개념은 독일로 수입이 되고 시장경제는 수입이 안됩니다. 그런데 시장경제는 프랑스와 영국으로 수입되고 복지국가가 수입이 안됩니다. 이 복지국가와 시장경제와 복지국가가 하나로 결합되는데 120년의 노동운동이 필요했습니다. 유럽에서, 그런데 원래 공자철학에서 두 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자유시장과 이 양민, 교민문제는 이것을 염두해주시고 그 다음에 경호국가는 그래서 이런 인정국가론에서 그래서 양민과 부민 교민론에서 나왔다. 이 경호국가라는 건 훗날 복지국가라는 개념으로 바꿔 부르게 됩니다. 여기서 부민은 공자이야기입니다. 양민은 맹자이야기고, 먹여 살린다는 소리가 양민이고 부민은 부자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위 나라에 갔을 때 제자가 공자님한테 , 사람이 많구나.’ 공자가 그러니까 사람이 많으면 그 다음엔 뭘 해야 됩니까?’ 그러니까 부민, 부자로 만들어야 한다.’ ‘이미 다 부자면 뭐해야 됩니까?’ ‘교지야, 문화적으로 높이 갈취해야 된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냥 단순히 먹여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공자가 염두 해두었던 것은 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얼마만큼 부자여야 되느냐, 먹고 사는 것이 물과 불처럼 흔해야 된다고 그랬습니다. 물과 불처럼 흔해야 남 먹고 사는 것도 신경 쓰고 밥 한끼 달라면 문 두드리면 열어줘서 밥도 주고 그러는 것이지 자기가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하겠느냐 부자로 만드는 것이 공맹철학에서는 첫 번째 중요한 일입니다. 이 먹고 사는 문제, 부자로 만드는 문제를 국가가 첫 번째 신경 써야 될 문제라고 하는 이 아이디어는 유럽에는 없었습니다. 그냥 전쟁이나 하고 법으로 도둑놈이나 잡고 야경꾼 노릇이나 하면 된다고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이 생각이 전해서 관료 혁명과 복지국가 이념이 생깁니다.

그 다음은 관용과 인도주의인데 관용이 불어로 똘레랑스라고 그러고 영어로 톨레랑스라고 그러는데 저희들 고유한 데서 나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유한 데서 나왔으면 생각이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죽입니까, 수백만을?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PIERRE BAYLE는 초기 계몽사상가입니다. 종교적 신앙, 양심, 정치, 학문, 표현, 출판의 자유와 관용을 3,000여 종파와 학파가 평화공존 하는 동아시아의 무제한적 종교자유와 철학적, 정치적 자유 현실로부터 도입했습니다.

나바레테라는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동아시아로 처음 들어오는데 이게 일본을 가도 이미 열 두 개 정도의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 들어갔더니 삼천 개의 종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싸우지를 않는 것입니다. 자기들 둘이 개신교, 가톨릭, 살벌하게 싸웠는데 이게 상상에 안 갔던 새로운 세계가 전개됐습니다. PIERRE BAYLE은 중국이라는 나라는 무신론적인 사회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중국은 유신론, 무신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나라지, 무신론이냐 유신론이냐 못박을 나라는 아닙니다. 물론 둘이 싸웁니다. VOLTAIRE는 유신론적인 나라로 봅니다. PIERRE BAYLE은 무신론적인 나라로 보고 싸우는 것입니다. 아무튼 중국은 종교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가 100% 보장돼있는 나라라는걸 압니다. 알면서 유럽을 그렇게 만들려고 거기다가 목숨을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 이 관용에 대한 책들을 썼는데 그 내용은 거의 동아시아이야기들입니다. 특히 VOLTAIRE의 관용론이라는 책을 보면 맨날 이 동아시아 예들입니다. 동아시아 예, 중국 예, 한국 예는 안 나오던데 한국을 잘 몰라서 안 넣은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각 다른 신념을 갖고 다른 신앙을 가지고 사는걸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으면 유럽은 원시사회가 될 거라고 계속 경고를 합니다. VOLTAIRE는 공자의 인 철학과 논어의 사해동포론으로부터 인도주의(Humanitarianism)를 도출합니다. 휴머니즘하고 휴머니테리어니즘은 다른 것입니다. 휴머니즘은 인본주의적 르네상스시대에 한 것이고 휴머니테어리즘은 이제 온정적인 인간성, 인간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 철학을 빼놓으면 공자철학은 아무것도 아니니깐 인 철학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서양에는 어떤 철학자도 또 어떤 신학체계 안에서도 혁명을 인정치 않았고 혁명이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백성이 혁명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도 혁명의 의무라는 생각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 졌냐 하면 막 서로 대결하다 보니깐 영국에서 1,2차 내전을 통해서 16세기 초에 벌어진 일입니다. 찰스2세를 목을 쳐버립니다. 그리고 크롬웰의 공화정이 들어섭니다. 이 느닷없이 벌어진 생각, 철학도 없이 벌어진 이 일 때문에 일단 한 12년간 공화정을 크롬웰 귀족 공화정입니다. 왕만 없이 귀족만 다 존재하고 귀족만 위에 가면 상원도 있었고 하원도 있었는데 크롬웰이 죽고 나서 그 아들이 호국경이 되었지만 2년 지배하고 무너집니다. 무너지고 나서 왕이 다시 복구가 되는데 왕정 복구가 되는데 크롬웰의 무덤을 가봤더니 부관참시가 돼가지고 뼈도 하나도 안 남아있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무덤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왕을 시해한다는 생각을 왕권신수설의 나라에서 왕을 시해해버린 것입니다. 그것을 영국인들이 도덕적으로 감당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정복구를 하면서 크롬웰을 부관참시와 난자를 해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에 다시는 영국에서 REPUBLIC이라는 공화정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싹 들어가고 지금까지 이제 여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을 뒤집어엎는 반정입니다. 왕을 몰아내고 또 왕조를 뒤엎고 이런 일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1차 혁명대전과 다시 명예혁명 사이에 맹자의 경전은 번역이 안되지만 맹자철학이 여러 형태로 소개가 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는 동방무역의 거점이었기 때문에 많이 드나듭니다. 그러면서 이 철학이나 사상이 많이 전해져서 혁명 이념이 네덜란드와 영국에는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면서 명예혁명이 나는 것입니다.

명예혁명은 왕을 몰아낸 다른 나라에서 왕을 꾸어오고 그 왕이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외국군대를 데리고 들어와서 자기나라 왕을 치는 것입니다. 그 치는걸 하원에서 밀약을 맺어서 끌어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본군을 끌어들여가지고 우리나라 왕을 치는 거니깐 아주 매국입니다. 치욕적인 혁명인데 이름이 GLORIOUS REVOLUTION, 명예혁명입니다. 하나도 명예롭지 못한데 왜 사람들이 이 정도로 바뀌었느냐? 그래도 이 혁명을 할 수 있다는 생각, 혁명이 인민의 권리고 의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서양에서는 혁명이론이 없었는데 공자와 맹자 반정 역성 혁명론에서 강조되는 백성의 혁명할 권리와 의무이론, 민주혁명사례로 가득한 동아시아 역사 중국역사도 우리나라 역사 끊임없이 그냥 다 뒤집어 엎어서 새로운 왕조를 만듭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이 역사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보면은 서양의 구체적인 역사적인 문서를 통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이것은 THOMAS JEFFERSON JEFFERSON이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입니다. 이 사람은 공자경전을 달달 외우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있는 분들보다 공자경전을 훨씬 더 많이 알았습니다. THOMAS JEFFERSON은 이 사람은 종교도 안 믿었고 청교도도 아니었습니다. 아무 종교를 안 믿었습니다. 오로지 공자 경전이라는 유럽의 계몽주의만을 섭렵했던 사람이고 마찬가지로 벤자민 프랭클린같은 국부로, 아무 종교도 가지지 않았고 공자철학을 신봉했습니다. 공자 철학을 이 사람이 신문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두 세달 내내 공자철학을 연재를 했습니다. 이 벤자민 프랭클린 못지 않은 사람이 THOMAS JEFFERSON입니다. 1776년 독립선언문,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이 다음 같은 내용을 자명한 것으로 본다. ALL MEN ARE CREATED EQUAL, 이 말은 이제 아까 예기에 나오는 천하에 아무도 귀하게 태어난 놈은 없다. 이 말하고 같은 말 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위배하고 이 권리를 침탈하는 놈은 인민이 그걸 바꾸고 쳐부수고 그 정부를 쳐부술, 때려부술 권리가 있다. 좀 밑에 내려가면 그 권리를 넘어갔고 그 인민의 권리이고 IT IS THEIR DUTY, 그들의 의무다. 이 혁명이 인민의 권리이고 의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서양역사에서 명시적인 언어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뭐냐, JEFFERSON은 서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서경에, 그리고 여기서 무슨 말을 하냐 하면 이 독립선언문을 더 읽어보면 THE PRESENT KING OF GREAT BRITAIN, 영국의 현재 왕은 하고, 왕을 직접 지목을 합니다. 옛날에는 왕을 지목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을 비판하려면 왕의 ADVISER 옆에 있는 놈들이 잘못, 보좌관들이 잘못됐다고 그랬지 절대로 왕을 지목해서 비판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 왕을 조지 3세입니다. 19개 항목으로 죄 행을 지목하고 비판을 합니다.

이것은 무 왕이 무 왕이, 주 나라의 무 왕이 은나라를 뒤집어엎고 마지막 폭군인 거를 칠 때 거를 지목을 하면서 거를 14개 항목으로 비판합니다. 그 중에 이제 기진만 뛰어 놀고 기진 말만 듣는다. 그런 말도 들어가 있고 그럽니다. 제사를 잘 안 지낸다. 그것도 들어있고 하여간 하늘을 잘 받들지 않는다 도 들어있고 그렇습니다. 남은 죄목도 많지만 이렇게 지목을 하고 내가 왜 혁명을 하는지 정당성을 거기에 설명을 합니다. 그것을 서경의 태사라고 합니다. 세 개가 있는데 상, , 하 첫 번째 태사의 구조하고 독립선언문의 구조하고 똑같습니다. 제가 하는 소리가 아니라 모든 미국 정치학자들이 지정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똑같겠습니까? 읽은 것입니다. 읽고 독립선언문을 그렇게 쓴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미국 독립선언문을 본뜬 걸로 유명한 제 2차 인권선언이 프랑스에 있습니다. 그 인권선언에도 뭐라 있냐 하면 WHEN GOVERNMENT VIOLETS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INSURRECTION, 반란은 백성에게 그리고 백성의 모든 계층에게 가장 신선한 권리이자 가장 필수불가결한 의무다. 이 혁명의 권리이자 저항권의 사상이 이제 문서화되는 과정입니다. 자세히 설명을 하면 엄청 길지만 간단히 요약을 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처음으로 혁명이라는걸 배우고 10년 후에 프랑스 대혁명이 터집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이제 미국혁명을 모방하는 과정이니까 터지게 된다.

결론을 짓자면 18세기 공자는 유럽계몽의 수호성인이었고 또는 무관의 제왕이었다. 제가 하는 소리가 따옴표로 들어가있는데 ADOLF REICHWEIN이라는 유명한 히틀러에 의해서 죽은 사민당 철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1924년에 쓴 중국과 유럽이라는 책에서 SO WURDE KONFUZIUS ZUM SCHUTZPATRON DER AUFKLARUNG DES 18. JAHRHUNDERTS. 18세기 계몽주의의 수호성인이었다. 공자는. 그 다음에는 LIONEL M. JENSEN이라는 사람은 1997년에 나온 MANUFACTURING CONFUCIANISM이라는 책에서 유사한 말을 합니다. CONFUCIUS WAS NOW EUROPE'S SAGELY UNCROWNED KING. 현자적인 무관의 유럽의 제왕이었고 중국의 제왕만이 아니라 유럽의 제왕이기도 했다. 이런 뜻입니다. 18세기 내내 100년 동안 공자는 유럽을 사상적으로 휩쓸었던 그런 철학자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더 결론적으로 파고들어가면 과연 유럽의 본래적인 것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나 성경책 속으로 우리가 들어간다면 과연 유럽의 현대화 같은 근대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을까?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전혀 그 안에는 모더니티라는 건 들어있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 철학과 성경책 속으로 아무리 깊이 파고들어가더라도, 유럽적 근대성의 어떤 참된 측면도 파악할 수 없다. 유럽적 근대성의 참된 측면들은 뭐냐 하면 감각과 감정의 인간적 철학적 가치를 아는 것이고 인정하는 것이고 경험과 실용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유와 평등, 말의 논쟁보다 마음의 공감을 인정해야 되고 지식보다 의견, 지식을 따져서 옳고 그름을 따지면 어떻게 민주정치를 합니까? 의견이니까 존중해주고 다수 의견이면 따라주고 소수의견이면 나중에 빠졌다가 나중에 다수의견이 되려고 애를 쓰고 opinion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지, knowledge로 정치하는 건 아닙니다. knowledge로 정치하는 건 공산당이나 하는 것입니다. 못 배운 놈들은 죽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정치하려고 들면, 민주정치의 선거는 시민투표지 잘아는 놈, 못 아는 놈 가르는 투표가 아니라는 건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내세와 신성보다 현세와 세속, 정의와 용기보다 보편적 인애와 예의도덕 해야 됩니다. 농업과 산업을 중시하고 상업과 시장을 중시하고, 백성이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는 생각, 인민복지와 백성의 부, 아까 부민을 백성을 부자로 만드는 것, 부민의 인애적 보장과 이를 존재이유로 삼는 사회복지국가, 화목과 평화 등을 긍정하고 중시하는 그 사상과 태도와 제도가 유럽적 근대성의 핵입니다.

이것은 공자철학에서는 다 들어있는 내용이지만 유럽의 어떤 희랍철학이나 어떤 성경책에도 들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전부 괄시하고 경멸하고 그랬습니다. 이 모든 내용을 그리스철학은 지중해연안 도시국가들간의 그리고 주변 야만인들과의 항구적인 전쟁상태로부터 탄생했고, 성경은 유목민족들간의 그칠 새 없는 전쟁상태, 상호정복, 노예화의 역사로부터 탄생했기에, 물질을 천시하는 금욕적 그리스철학과 성경은 신과 신탁, 계시와 신화, 초월성과 형이상학, 삶과 현세보다 죽음과 내세, 감각과 감정보다 이성과 지혜, 의견보다 진리와 지식, 공감과 공감대보다 말과 논쟁, 엄청 싸웁니다. 인애와 예의보다 용기와 정의, 화목과 평화보다 투쟁과 전쟁, 정복과 강점, 민중복지에 초연한 군사적 야경 국가와 무력, 民貴君輕, 백성이 귀하고 임금이 가볍다는 맹자 말입니다. 그것보다 王權神授說的君貴民輕, 임금이 귀하고 백성은 가벼운 그런 생각, 자유와 평등보다 혈통신분과 신분위계 등을 아주 중시하지만, 공자철학이 강조한 저 ‘유럽적 근대성’의 諸이념과 가치들을 모조리 경멸하거나 부정하기 때문이다. 철학들은, 이 안에서는 100날 도출을 해도 근대성을 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실천적 결론을 한번 보면 17-18세기에 공자주의와 동아 문화에 매료되었던 서구諸國들 우리가 예를 들면 네덜란드,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등은 다 근대화되어서 높이 발전했고 서양의 계몽주의와 근대성을 대표하고 있는 반면에 공자철학과 동아시아문명에 대해서 관심 없이 오직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 및 그리스 형이상학과 스콜라철학의 ‘합리주의적 독단’에 의해 일관되게 지배되어온 남유럽국가들,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 그리고 동유럽국가, 라틴아메리카국가는 모조리 동아시아국가들보다 GDP면에서 저 발전 했다는 데 주목해야 된다. 여기 중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가 스페인인데 스페인은 GDP도 총액도 우리보다 낮고 1인당도 낮습니다. 공자를 전혀 몰랐던 나라들은 다 못삽니다. 그런데 공자를 몰랐어도 모든 유럽이 아니라 가장 서쪽의 유럽, 극서입니다.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극동입니다. 극동과 극서 사이에 교류를 계속 하다 보면 그사이에 샌드위치 되어있는 나라들, 말레이시아니, 인도네시아니, 이슬람제국 여기에서 왔다갔다하다가 누가 떨어뜨리는 문명의 조각들을 찌꺼기를 받아 먹으면서 어느 정도 발전할 수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실제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이런 나라들의 GDP 평균이 남미 나라들 GDP평균보다 높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제국이 잘사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석유가 나와서 엄청 잘 살지 않습니까? 오일달러 갖고, 1인당 국민소득 7만 달러인 바레인 이런데도 있고 그러니까 그건 공자영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석유 때문에 결국 서구에서 우리가 또 극서와 극동에서 자동차를 많이 타니까 기름값이 올라서 잘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돈이 그리로 중동으로 몰려 가는 거라고 봐야 됩니다.

또 극동과 극서간의 교호적 문명패치워크, 문명 패치워크란 말 쉬운 말로 하면 문명 짜집기 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서로가 동아시아와 극서, 즉 서양유럽이 발전했다. 17~18세기 극서가 극동에서 배워 기존철학에 짜깁기하여 근대유럽을 만들고 19-20세기에는 역으로 극동이 극서에서 배워 극서에 맞먹을 현재의 동아시아를 만들었다. 한중일, GDP 2020년에는 미국의 GDP와 맞먹게 됩니다. 유럽을 능가하고, EU를 능가하고 미국과 맞먹게 되는 시대가 옵니다. 지금 2020년이니깐 한 5년 뒤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19~20세기는 역으로 극동이 극서를 맞먹을 현재의 동아시아를 만들었고 그래서 극서와 극동의 시차적인 동반발전이 이루어졌다. 또 문명간 패치워크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문명이 있으면 서로 짜집기 하게 돼있습니다. 그렇지만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극동과 극서의 문명패치워크는 서양과 이슬람문명 간의 패치워크나 서양과 힌두문명 간의 패치워크 등 다른 모든 문명패치워크보다 더 긴밀하고 더 분자 하다는 점에서 唯一無二하다. 이슬람은 지금도 서양의 인권이나, 인권개념이나 그래서 서양의 민주주의를 안 받아들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렇게 막 분주히 서로 교류하는 것 아닙니다. 극동과 극서만 서로 대단히 분주하게 교류했습니다. 그 사이에 그들이 조금 찌꺼기를 얻어먹은 것입니다.

극동과 극서간의 이 문명패치워크는 세계문명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이 패치워크는 세계적 차원에서 중요한데, 중요하고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다. 양 지역간의 분주한 교호적 패치워크는 기독교문명과 유럽문명만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양 지역에 끼어있는 모든 문명권의 발전에 기여했다. 물론 거기에 끼어있지 않은 아프리카나 남미는 발전을 못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대단히 어렵게 지금도 살고 있다.

또 우리가 문명관적인 문명의 어떤 감정과 관련해서 보면 서양의 문명우월의식은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거 없는 것이고, 동아시아에서 다 배워서 발전한 것인데 또 동아시아의 문명열등의식과 자 문명 비하의식, 우리나라 문명을 깔보고 우리나라가 뭘 했다 하면 깔보는 사람들이 지금도 엄청 많습니다. 동아시아사람들은 동아시아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또 반대로 아예 그냥 동아시아인들 중에 반서양적, 반서구주의, 서구적인 건 다 싫어하는 반제 투쟁과정 속에서 생겨난 그런 생각들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 우리들 것을 더 발전시킨 서양의 문물을 우리가 거부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우리 대신에 더 발전시켜줬으니까 고맙다고 그래합니다. 더 잘 배워야 합니다.

동아시아 국가들만이 공자철학과 동아시아문화로부터 기원한 유럽적 근대성이 애당초 우리 몸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나라나 동아시아로부터 배워간 그래서 더 발전시킨 문명이라 처음 들어올 때부터 우리 몸에 맞았습니다. 우리 몸에 맞았기 때문에 100년의 짧은 기간에 서양을 짜집기 하여 서구와 맞먹는 근대화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된다.

구식의 유교 또는 공자주의는 완전히 오늘날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동아의 생활문화의 형태로 잔존하고 있다. 무의식적인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 들어있습니다. 수도 없이 말합니다. 웬만한 사람들 만나면 형님, 동생 하고 언니, 이모 그러지 않습니까? 가족관계를 사회관계에 일반화 시키는 이것은 유교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 그럽니다. 만나면 오빠, 그러면 다 따꺼입니다. 그런 사적인 관계를 일반화해서 쓰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은 아마 예를 들면 무의식적인 우리의 생활문화다. 공자철학은 미래철학으로 재건될 필요가 있습니다. 유교적인 생활문화는 이전의 유럽공동체인 EC에 비견되는 그 어떤 동아 공동체의 건설에 쓰일 수 있는 문화적인 기반자원이다. EC국가들, 지금 EU로 발전했습니다. 이 기독교라는 말 입밖에 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은 그들 안에도 많은 종교들이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라는 것에 기초해서 기독교 국가들만 받아들입니다. 50년 전부터 터키가 EU에 들어가려고 계속 신청했는데 한번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묵언으로 배제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어떤 문화적인 공동성이 있기를 서로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몇 개나라 싱가폴, 월남, 대만, 중국, 한국, 일본 이런 나라들은 유교적인 생활 잔재가 남아있고 또 북한도 공산당이 아무리 짓밟았어도 높은 사람들이 감독 안 하면 술 먹을 때랑 똑같습니다. 남한사람들하고 똑같다는 것입니다. 형님, 아우 하는 것입니다. 동무 이런 거 없습니다. 동무, 동지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 형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결국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기반 문화자원이 있어야 됩니다.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갈등이 심한 지역입니다. 이 상태를 계속 지속하면 싸움 날지 모릅니다. 그러기도 하고 만약 이 상태에서 우리는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독일이 만약에 EC EU를 향한 그런 발걸음이 없었으면 독일이 동독하고 서독이 합쳐 큰 나라가 되면 영국과 프랑스 이런 데는 겁먹습니다. 그런데 통일이 되는 국민에서는 한나라, 즉 서독은 EC의 멤버였고 동독은 아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아무래도 큰 자기들의 친구인 큰 나라 서독이 동독을 먹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우방국가가 동독을 먹는 거니까 봐준 것입니다. 그리고 끌고 들어오면 EC안에서 요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아시아나 이렇게 험난한 상황인데 민족끼리 잘해가지고 남북한이 통일된다? 그런 꿈을 버려야 됩니다. 돌아가는 길 같지만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설해서 동아시아 공동체 안에서 해결해야 되고 일본의 방해를 막으려면 일본을 반드시 공동체 안으로 끌어 들여야 된다. 그냥 놔두면 말썽꾸러기가 되고 맙니다. 끌어들여서 같은 나라니까 그 안에서 어떤 절차에 따라 분쟁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또 동아시아공동체에 중국, 북한이 빠져있다면, 우리는 중국하고 같은 동아시아 공동체 멤버국간데 우리가 북한을 흡수한다고 할 때 중국이 그렇게 겁나 하겠습니까?  만약에 동아시아 공동체 안에서 대만이 동아시아 공동체로 들어오게 되면 중국이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중국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거래가 안됩니다.

공동체의 구조 속에서만 우호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냥 분란되고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되겠습니까? 유럽을 깨웠다고 하는 이 강의에서도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신, 그런 영향을 미쳤던 동아시아 공동체의 문화 그런 유교적이고 유학적인 문화를 미래에 어떻게 우리가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이 강의를 마치고 싶습니다.

 

 

손자영 연구원 (jyson@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