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esting,
Pioneering and Satisfying

 뉴스레터

제목 [2012년 2호]경영자독서모임: 뜨거운 중동 쿨하게 읽기
발간일 2012-07-17 첨부파일 사진10.jpg

뜨거운 중동 쿨하게 읽기

 

박만원 매일경제신문사 국제부 기자

 

이 원고는 201264일 박만원 기자의 MBS 강의를 바탕으로 산업정책연구원(IPS)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실 국제부에서 이 책을 쓴 것이 작년 늦봄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 많은 일들이 벌어 졌습니다. ‘무바라크(Hosni Mubarak)’가 종신형을 선고 받았고,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시리아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혁명으로 인해서 민간인 대학살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보면 우리 KOTRA나 지식경제부에서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리비아 등지로 가고 있는데 이제부터 재건특수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끝나지 않은 이슈 자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이나 아랍의 봄에 대해 부담 없이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강의에 대한 내용은 중동이 어떤 땅이며, 중동과 아랍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개념에 대해 먼저 설명 드리고, 이슬람교를 말할 때 항상 등장하는 수니파와 시아파, 이 두 종파가 어떻게 다른지, 이 두 종파로 인한 갈등이 어떤 것인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또 자스민 혁명의 원인과 작년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이유와 어떤 전개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에 관해서도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중동의 왕정 국가 중에서도 무풍 지대가 있었는지 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중동의 오해와 편견 부분에 대해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중앙아시아까지의 지도를 보면 중동은 아랍이나 이슬람보다 모호한 개념입니다. 흔히들 페르시아만과 그 주변 국가들이중동이라고 정의합니다. 중동이라는 말은 미국 해군의 아버지라고 하는알프레드 머핸(Alfred Thayer Mahan)’이 처음으로 말하였습니다. 1902년에 서양에 비해서는 오른쪽이고, 인도에 비하

면 왼쪽이라는 의미로 ‘Middle East’라고 처음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를 제외하고 페르시아만과 그 접한 나라들이라고 알프레드 머핸은 처음으로 정의를 내립니다.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라고 비교적 정확하게 정의됩니다.

 

아랍리그(Arab League)’라는 아랍연맹 국제 기구에 속해있는 22개의 회원국을 바로 아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란은 왜 아랍이 아닐까요? 그들은 페르시아어를 쓰기 때문에 아랍 국가도 아니고 아랍 연맹회원국도 아닙니다. 그러면 아랍연맹 회원국들, 아랍국가라고 칭하는 나라가 어디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등 우리가 흔히 아는 중동 산유국과 북아프리카리비아’, ‘알제리’, ‘수단’, ‘튀니지’, ‘모로코’, ‘모리타니아외에 매우 작은 국가인지브티’, ‘코모로등이 아랍연맹 회원국입니다. 수단, 소말리아라고 하면 아프리카로 생각하지 아랍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두 나라 모두 아랍어를 쓰고 이슬람교도 믿습니다. ‘이슬람 국가는 이슬람교가 국교이거나 대다수 국민들이 믿는 나라입니다. 국제기구로이슬람 협력기구(Organization of Islamic Conference)’57개 회원국과 13억 명의 인구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슬람 인구라고 하면 13억 명이라고 하면 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페르시아만 주변이 흔히 알고 있는 중동이고 이슬람의 본산인데 사실 인구가 얼마 되지 않아서 1억을 넘기는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슬람을 믿지만 페르시아만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들을 주변부 이슬람이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2 5천 만 명,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2억 명 정도의 국가와 아프리카의나이지리아 1 5천 만 명 정도 됩니다. 주변부 이슬람에는 그 외에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등 중앙아시아 국가도 있습니다. 그 중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이 네 나라만 인구가 7 5천 만 명이니 이슬람 인구의 60% 이상을 페르시아만이 아닌 주변부 이슬람 국가가 차지합니다.

 

수니파(Sunni)’시아파(Shia)’를 지역별로 보면 거의 대다수가 수니파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시리아그리고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도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90%의 이슬람교도가 수니파로 분류됩니다. 이에 반해서 시아파는이란’, ‘이라크’, ‘시리아정도가 이슬람 57개국 회원국 중에서 시아파로 분류되는 나라들입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조선시대 당파 분쟁처럼 사소한 분쟁으로 종파가 나뉘어집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마호메트’, 정확히는 무하마드(Muhammad)’가 아들이 없어서 후계체계가 혼란스럽게 되었습니다. 그의 후계자를칼리프(Caliph)’라고 하는데 이슬람 제국에서 칼리프를 비워둘 수 없기 때문에 1, 2, 3대를 거치면서 4대 칼리프로 갑니다. 656년 전, 3대 칼리프 우스만(Uthmān)이 후계 투쟁을 하다가 암살 당합니다. 그 때 우스만을 대체한 칼리프가 무하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알리(Ali)’입니다.

   

그런데 단종 이후 세조가계유정란을 일으켰을 때 세조의 정통성에 항거해서 사육신이 있었던 것처럼 3대 우스만을 따르고 4대 칼리프인 알리를 거부한 세력이 생겨납니다. 암살이라는 비정상적인 경로로 정권을 얻었기 때문에 알리에게 정통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음으로 무슬림끼리 전쟁이 벌어집니다. 결국 알리가 쫓겨 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종파가 나뉘어 알리만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아파입니다. 알리와 그 후손을 따르는 사람들이시아트알리(Shiat Ali)’인데 이 말을 줄여서시아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모든 칼리프를 인정하는 이슬람교를수니파라고 합니다. ‘수니(Sunni)’라는 것은 무하마드의 말과 행동을 수나(Sunnah)’라고 하는데 수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종파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90%가 수니파이고 나머지가 시아파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수니파와 시아파가 정통성 때문에 갈라졌지만 종교적으로도 차이가 있습니다. 수니파는 하루 5, 시아파는 하루 3번 예배를 봅니다. 그리고 수니파는 코란 자체가 완전하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의 역할이 미미합니다. 그냥 코란을 읽어주는 사람이고 지도자(Imām)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서는 종교 지도자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란을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지도자의 시각에 따라 관점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란과 같은 시아파 국가에서는 종교 지도자가 정치 지도자 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갖습니다. 몇 달 전 이란 대통령이 뺨을 맞았다고 하는데 이란이 시아파이기에 가능합니다. 또 한가지 차이점은 이슬람의 5대 의무란 신앙고백, 예배, 헌금, 라마단 기간의 금식, 메카의 성지순례입니다. 시아파는 여기에지하드(Jihad)’라는 것을 추가합니다. 지하드란 원래 더 나아가기 위한 자신과의 투쟁이나 노력이었는데, 지금은 이교도에 대한 성전이라는 과격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자스민 혁명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스민 혁명이라고도 하고아랍의 봄’, 혹은아랍 민주화라는 말도 합니다. 그러면 자스민 혁명이라고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튀니지에서 처음 시작되어서 튀니지의 국화를 따서 자스민 혁명이라고 합니다. 자스민 혁명은 2011년 초에 시작되었습니다. 죽은 뒤에 인권상을 수상한부아지지(Mohamed Bouazizi)’는 우리나라의 전태열 열사 같은 인물입니다. 아랍 세계를 뒤흔든 자스민 혁명의 시발점은 이 젊은 노점상에게서 시작했습니다. 부아지지는 튀니지 중부시디 부지드(Sidi Bouzid)’라는 도시에서 26살의 나이로 과일 행상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사실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형편에 부모가 고생을 하여 대학을 졸업시켰으나 기업이 없으니 일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낙향하여 과일 행상을 합니다. 부아지지는 부양가족이 많아서 부모와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과일 행상도 쉽지 않습니다. 불법 노점상이라고 매일 단속을 나와 행상을 빼앗아 버리고 구류시켜 버리니 생계가 막막합니다. 그런데 열이나 되는 식구를 책임 지는 부아지지에게 노점상은 삶의 터전이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일자리였습니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2010 12 17일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 자살하여 무능한 독재 권력에 온 몸으로 항거합니다. 결국 분신한 지 보름 여 만에 26세 짧은 인생을 마감합니다. 장례식이 보름이 지나 1 4일에 열립니다.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적인 추모 인파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타고 밀려 들었습니다. 부아지지가 분신하고 그가 분신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지게 된 뒤, 그 추모인파가 반 정부 시위대로 돌변합니다. 그래서 정확히 부아지지가 숨을 거둔지 열흘만인 1 14, 독재정권이 항복합니다. 20년 넘게 독재한 벤 알리(Ben Ali)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여 이렇게 자스민 혁명의 시발지인 튀니지에서 가장 먼저 독재 권력이 축출됩니다. 그리고 나서 빠른 속도로 다른 나라로 혁명이 번져 갑니다.

 

튀니지에서 먼저 시작된 이후 이집트로 넘어가 리비아로 갑니다. 그리고 예맨을 거쳐서 가장 마지막 남은 나라가 시리아입니다. 튀니지에서 벤 알리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 길에 오른 1 14일에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1 28분노의 날엄청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루 동안 70여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s)’이 시위에 참가합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 형제단과 같은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이 시민군이 동조했다는 것은 그 정권이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슬람 형제단이 시위에 참가한 후 보름도 되지 않아무바라크가 사임을 발표합니다. 그가 사임하고 3, 4일도 안 되어 리비아에서도 가장 반정부 감정이 심한 곳인 벵가지(Benghazi)자스민 혁명의 불길이 옮겨 붙습니다. 리비아는 튀니지와는 차원이 다른 나라입니다. 거기는 워낙 통제된 나라로 튀지니, 이집트와 달리카다피(Muammar Gaddafi)’가 군 병력과 경찰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리비아는 결과가 다를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4 30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서방 국가들이 리비아에 폭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결국 거점트리폴리(Tripoli)’까지 엄청난 타격을 입고 수세에 물리게 됩니다. 공습 후 6개월 만에 반군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예맨은 아라비아 반도 끝에 붙은 작은 나라입니다. 카다피 못지 않게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가 오래 집권 했습니다. 무바라크나 벤 알리는 1, 2달 만에 손 들고 망명을 했으나 압둘라 살레는 6개월 이상 버텼습니다. 그러나 카다피 사망 후 1달 만에 권력 이양에 서명합니다. 결국 시리아만 남게 됩니다.

 

세계에는 독재자도 많고 가난한 나라도 많습니다. 그런데 유독 북아프리카, 중동에서 2011년이라는 시간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난 것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너무 한 사람이 오래 집권했습니다. 벤 알리가 24, 무바라크 30, 카다피 42, ‘알 아사드(Bashar al-Assad)’ 12년을 했습니다. 12년이면 얼마 안 된 것 같지만 아버지가 30년을 했으니 대통령 국가에서 부자가 반 세기를 집권한 경우입니다. 두 번째로 정부가 무능했습니다. 튀니지,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은 못 사는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의 20년 간 경제성장률 살펴보니 22%입니다. 연평균이 아닌 20년간 합산된 수치가 22%였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이나 중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는 350% 성장했습니다. 숫자만 비교해도 독재자들이 얼마나 무능했는지 감이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장하지 못하면 문제가 무엇일까요? 가장 큰 것은 일자리 창출입니다. 자스민 혁명 국가를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일자리였습니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시리아 등은 모두 실질 실업률이 20% 정도 되고 청년 실업률은 그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청년 2명 중 한 명, 혹은 3명 중 한 명은 일자리가 없으니 사회 불만 세력이 되어 거리에 나와 반정부 군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부아지지가 분신 자살 한 시기가 2010년 말인데 그 때가 바로 기름 값과 곡물 값이 사상 최대로 높아진 때입니다. 일자리는 없고 최소 생계에 필요한 기름 값, 곡물 값이 뛰자 그것이 표현된 것이 자스민 혁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름을 부은 것이 인터넷입니다. 지면에 오르내린 말 중 잘 가라, 부아지지. 우리가 복수해 주겠다는 말이있었습니다. 부아지지가 죽고 나서 장례식에 친구들이 한 말인데 SNS를 통해 튀니지는 물론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튀니지에서 부아지지가 죽고 나서 단기간인 10일 만에 손 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인터넷을 통한 응집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스민 혁명 당시에 튀니지에 한 유명 SNS 가입자는 200만 명이었고 이집트에는 500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처럼 폐쇄적인 리비아 조차도 50만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북한과 쿠바는 철저하게 인터넷을 막고 있고 중국에서도 유명 SNS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쿠바는 원래 해저 케이블을 끌어 올려다가 자스민 혁명을 보고서 SNS 혁명이라고 생각해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제가 보기에 인터넷 혁명의 하이라이트는 중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스민 혁명 시절에 베이징의 명동 정도 되는왕푸징(王府井)’이라는 곳에 중국 젊은이들이 민주화를 요구해 보자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안들이 일망타진하여 미풍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누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중국에 출장을 가서 공산당 선전부장류윈산(云山)’을 만났는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중국 공산당의 최대 도전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블로그 개념인 중국 웨이브 사용자가 3억 명이고 인터넷 사용 인구가 5억 명인데 이 모든 사람을 통제하고 감시 감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공산당 중앙선전부장은 한국의 방통위원장과 공보처장관 등의 역할을 합쳐 놓은 엄청난 권력입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그 사람들도 5억 네티즌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중국 인터넷 기사를 보면 체제 선전적이고 관용언론의 티가 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잘 보지 않고 인터넷 댓글을 잘 봅니다. 공산당 지도부를 조롱하고 후진타오(胡錦濤)나 원자바오(溫家寶)를 비판하는 가감 없는 댓글이 올라옵니다. 중앙 선전부장이 그 댓글을 차단하는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후진타오가 관계되고 북한에 대한 예민한 사항에 관한 것은 댓글을 차단합니다. 그런데 관둥성장()의 비리사건이라든지 부장() 정도 비판하는 사안은 댓글 차단을 안 합니다. 사안에 따라서 1만 건의 댓글이 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인터넷 혁명의 하이라이트는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네 번째로 서방의 방조와 원죄입니다. 무바라크, 벤 알리, 카디피, 아사하드, 예멘의 살레 등은 미국과 유럽의 협력자이자 공생관계였던 사람들입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1981년에 아랍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합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들고 중동 한 가운데서 전쟁을 몇 번이나 치르고 이긴 아랍의 철천지 원수입니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군사 원조와 경제 원조를 받아내기 위한 조건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give and take’로 받을 것은 많이 받아서 30년 동안 연 평균 10억 달러를 지원 받았다고 합니다. 튀니지와 예멘은 대 테러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의 중요한 기지였습니다. ‘빈 라덴(Osama bin Laden)’을 잡기 위해 민주주의를 짓밟는 독재자들이지만 미국이 엄청난 군사 원조를 해 줍니다. 그래서 미국은 테러라는 작은 소동을 제압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마치 유럽이 리비아에 대해 민간인 피살하지 말라며 폭격을 한 것 같은 후안무치 한 일입니다. 사실 리비아는 원래 반미 성향 국가로 게다가팬암기 테러로 무고한 민간인을 몇 명 희생시키고 있어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리비아를 다시 국제 사회로 불러 들인 것이1990년 대 토니 블레어((Anthony Charles Lynton Blair)’ 시절에 영국이 관계 정상화를 하고 군사 교관을 파견하고 군사훈련까지 시켜 줍니다. 바로 석유 때문이었습니다. 중동에는 산유국이 많은데 그 외에도 여러 나라 많습니다. 북미나 북해, 남미에 있지만 석유라고 다 같지 않고 경제성을 따져야 합니다. 북해에서 지하 수십 키로 미터를 파야지 채취 가능한 석유라고 해도 배럴 당 60달러 이상이면 경쟁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리비아의 유전은 배럴 당 1달러짜리가 있다고 하니 경제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영국의브리티시패트롤(British Patrol)’이나 스페인의렙솔(Lepsol)’, 프랑스의토탈(Total)’, 이탈리아의에니(Eni)’ 등 유럽의 석유 메이저들이 속한 나라들이 주축이 되어 리비아를 폭격합니다. 그런데 리비아와 대비되는 나라가 시리아입니다. 리비아만큼이나 많은 민간인들을 죽이고 게다가 자스민 혁명을 1년 이상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나라가 시리아입니다. 며칠 전에훌라라는 도시에서 민간인을 100여 명 이상 학살했습니다. 이러한 반 인륜 범죄, ‘제노사이드(Genocide’)를 저지른 나라를 공습하지 않는 이유는 전리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몇 조 원, 몇 천 억 원을 들여 공급한다 한들 기름이 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시리아는 불행한 나라입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자스민 혁명이 동진하여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예멘으로 가다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멈춰 버립니다. 아라비아 반도도 괜찮은 상황은 아닙니다. 여기에도 수 십 년간 독재한 절대 왕정이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아랍에미리트 연합(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등과 페르시아만 연해,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절대왕정 6개 국을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 GCC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혁명의 무풍지대였습니다. 바레인과 오만에서 중국처럼 소요가 있었으나 며칠 가지 못하고 이 나라들은 혁명 속에서 온전하게 왕정을 지켜 냈습니다. 그 차이점은 그들이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튀니지는 1인당 GDP 4,000달러 조금 넣었고 이집트가 6,000달러 정도입니다. 그런데 6개 국은 카타르가 10만 달러를 넘고 사우디, 쿠웨이트 등도 5만 달러 안팎입니다. 복지 수준을 보면 북유럽국가 보다 낫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두바이 등은 모두 무상교육으로 대학 및 해외 유학까지 지원해 줍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무상 의료에 갖가지 보조금도 많은 나라는 10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결혼자금도 국가에서 나오고 창업 자금도 나옵니다. 여기에 더해서 자스민 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경기 부양책으로 40조 원을 풀었습니다. 심지어 공무원들 월급은 한꺼번에 15%를 올려 주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체제 불만을 가지고 일자리도 없는 배고픈 젊은이가 있어야 혁명이 가능한데 6개 국은 배고픈 젊은이들이 없는 나라입니다.

 

걸프협력회의 6개 국 모두 의미가 있으나 책에서는 아랍에미리트연합카타르두 나라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긍정적으로 중동 경제를 대표하고 뉴스의 초점이기 때문입니다. ‘두바이는 대부분 한 번 가 보셨을 것입니다. 두바이에는 아랍에미리트 항공편으로 도착해 세계 유일 7성 호텔, ‘버즈 알 아랍 호텔(Burj Al Arab)’, 에 둘러 보는 것이 코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프로젝트가 지난 6~7년 동안 두바이에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층 빌딩인버즈 두바이(Burj Dubai)’를 비롯해 사막에서 실내 스키를 즐기는 것도 있었고, 세계 지도를 옮겨 놓은 듯한 인공섬, 팜 월드도 있었습니다. 만화에서 있을 법한 도시 계획을 시작한 사람이 통치자셰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ed)’입니다. 부족국가이기 때문에 국왕이 아닌 통치자입니다. 두바이가 중동 허브로 부상하여 아파트도 많고, 쇼핑몰도 많고, 항공 노선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갑니다. 아랍에서 보기 힘든 놀 거리를 제공하자 아랍의 부자들과 세계적인 관광객들이 두바이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야심가, 셰이크 모하메드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교육을 받고 개발 마인드로 무장한 CEO 국왕 카타르 국왕이 두바이가 먼저 치고 나가는 것을 보고 빠른 속도로 금융 허브 등을 벤치 마킹하고 펄 시티라는 해변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바이가 에미리트 항공으로 국가적 부가가치를 높이자 카타르 항공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하여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항공사로 키워 놓았습니다.

 

알 자지라(Al Jazeera)‘라는 말을 자스민 혁명에서 자주 보셨을 것입니다. 알 자지라는 아랍의 영어권 방송으로 대형 방송사로 CNN이나 BCC에 버금가는 방송사입니다. 알 자지라 정도를 갖추려면 100억 달러 단위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세계 2위의 가스수출국의 국왕이 투자합니다. 알 자지라는 세계에 아랍을 알리는 창구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카타르는 월드컵도 개최합니다. 이는 아랍 국가 최초입니다. 중동에서 월드컵이 가능할까, 꿈도 못 꿀 일을 2020년에 이룹니다. 이런 상상력과 추진력,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국왕들이 아라비아 반도, 걸프협력회의에서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강의 초반에 혁명은 진행형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시리아뿐 아니라 독재자를 쫓아 낸 나라도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고통을 겪는 이유와 앞으로 갈 길은 무엇인지 알아 보겠습니다.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리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서 수 만 명의 민간인 희생이 있었고 그 중 어린 아이도 포함되었습니다.

 

먼저 튀니지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튀니지는 가장 먼저 자스민 혁명이 일어났고 민주화 과정이 빨라서 작년 10월에 총선 이후 12월에 대선까지 치릅니다. 현재 인권운동가 출신의 새 대통령몬세프 마르주키(Moncef Marzouki)’가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나아진 점이 없었습니다. 배고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빵을 사기 위해 시작한 혁명임에도 작년 경제 성장률은 0% 였고, 청년 실업률은 30%에 달합니다. 튀니지도 산유국이 아니기 때문에 부패한 관료조직을 일소하고 외자유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언론과 외신 진단입니다.

 

이집트의 최근 현황을 보면 무바라크는 사실상 무기징역이나 다름 없는 선고를 받습니다. 그런데 위의 두 번째 사진과 같이 근엄한 표정을 짓는 이유가 있습니다. 며칠 전 대통령 선거가 있었으나 과반 득표자가 아무도 없어서 2주 뒤에 결선 투표를 다시 해야 합니다. 두 명의 후보 1, 2위가 이집트에 썩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들입니다. 한 명은 무바라크 밑에서 마지막 총리를 하던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무슬림 형제단이 주축이 되어 만든자유정의당소속입니다. 그런데무슬림 형제단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들은 알카에다나 탈레반 등 과격 집단과는 다르지만 과격주의자들이기 때문에 헌법을 이슬람 율법에 따라 바꾸자고 하는 집단입니다. 결국에는 중도 시민 세력이 크지 못해서 무바라크가 30년을 집권하다 보니 민주화 정부를 이끌 만한 세력이 생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2012 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마찬가지로 근본주의무슬림 형제단이 제1당이 되었습니다.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다음은 시리아입니다. 위의 세 번째 사진을 보시면 시위대가 들고 있는 것이 어린이들의 시신입니다. 시리아는 혁명 후 1년도 더 지났으나훌라라는 지역의 민간인 학살로 어린 아이 20여 명이 죽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서방에서 가져 갈 전리품이 없다 보니 관심이 없고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습니다. 이웃 아랍의 형제들이라고 하는, 아랍연맹 에서도 유럽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서 리비아처럼 공습을 하든지 지상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UN에서 개입을 하지 못합니다. 바로 안보리 때문입니다. 안보리 의사결정 체계를 보면’P5'라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다섯 나라가 만장일치 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시리아 군사 개입을 하려면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야 하는데 러시아와 중국이 막습니다. 특히 중국보다 러시아가 문제로 전통적으로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 시아파 국가들과 예전부터 특수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아파 국가들은 워낙 반미 정권이 많았고 수니파는 친미 성향이다 보니 진영 논리에 의해서 시리아와 특수한 관계가 형성되어 앞으로도 그다지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지난 달 러시아 대통령으로 푸틴(Vladimir Putin)’이 취임하였는데 전임자인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와 차별화하는 가장 큰 점이 외교노선입니다. 메드베데프는 미국과 유럽이 아주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박사 출신이고 젠틀하며 서방에 대해 극단적인 언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푸틴은 달라서짜르(tsar)의 리더십을 추구하여 오바마의 회담요청을 거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푸틴 집권 기간에 시리아에 대한 UN 차원의 군사 개입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리비아도 아직 갈 길이 멉니다. 42년 독재자 카다피를 몰아 냈지만 끝이 아닙니다. 아랍 국가들이 보통 부족사회입니다. 리비아도 카디피라는 절대 권력이 사라진 순간 지방 족장과 군벌이 메우고 있습니다. 안보적 상황에서 무정부 상태나 똑같은데 지방 군벌과 족장들이 비공식적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2012년 과도정부가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하는데 뿌리 깊은 리비아 동서 지역감정이나 부족장과 군벌 간의 알력이 총선을 통해 표면 위로 올라오는 경우 극단적으로 또 한 번의 내전을 겪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스민 혁명의 전개 과정과 그 후를 설명 드렸습니다. 며칠 전 무바라크가 종신형을 선고 받으면서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튀니지의 벤 알리, 리비아의 카다피, 예멘의 살레 그리고 이집트의 무바라크, 시리아의 알 아사드라는 이 5명의 독재 권력이 자스민 혁명으로 인한 말로가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선 카다피는 시민군에 잡혀서 사살되었고, 무바라크는 민간 시위대 발포 명령과 부정축재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튀니지의 벤 알리는 국외,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을 갔고, 시리아의 알 아사드는 아직도 남아서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시민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가장 해피한 케이스는 예멘으로 33년 통치한 살레는 작년 11월에 정권을 이양하는데 그 조건으로 지금까지 그가 행한 모든 통치와 시위대의 탄압에 대한 면책을 받기로 했습니다. 저는 살레를 보고 나서 북한이 떠오릅니다. 김정일과 김일성이 자연사했는데 김정은은 어떨까요? 의외로 국민 여론으로는 법정에 세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예멘의 살레처럼 면책을 줘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중도 시민 세력도 없고, 온건한 공무원 조직도 없고, 일방적인 엘리트 밖에 없는데 그들을 포섭하지 않고서는 북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평화적 통일이든지 급변에 의한 통일이든지 엘리트와 김씨 왕조를 사면해 줘야 한다고 의외로 많은 탈북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자스민 혁명에 대해 정치적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오늘 저는 강의라기보다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과 오해와 편견에 대해 더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슬람이라고 하면 어떠한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폭력적, 알카에다, 탈레반, 911테러 등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많이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미국이 오랫동안 빈라덴, 알카에다, 탈레반 등의 테러집단과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다 보니 CNN이나 뉴욕타임즈나 BBC 등 주류 매체에 투사되어 그 이미지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이된 것 같습니다.

 

위의 첫 번째 사진은 지하드’, 성전을 수행하는 이슬람 전사입니다. 지하드는 결코 호전적인 말이 아닙니다. 지하드라는 말이 결코 호전적인 말은 아닙니다. 신앙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인적인 투쟁인데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정치적으로 악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슬람을 규정하는 단어 중 하나가 지하드, 성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런데 지하드’, ‘빈라덴’, ‘알카에다등은 주류 이슬람, 22개 회원국의 아랍 연맹과 57개 국이 참가하는 이슬람협력 기구 등에서 비판되고 있습니다. 이슬람이 태동한 페르시아만과 그 주변은 역사적으로 개방된 곳입니다. 이슬람뿐 아니라 기독교, 유대교 등 세계적인 종교 발생지입니다. 종교의 발생지는 대부분 순례자들이 연중 넘쳐나기 때문에 국제적일 수 밖에 없고 개방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아주 열린 공간이 오늘의 중동입니다. 그리고 이슬람 교도가 결코 배타적이지 않고 나름대로 공존하며 살아 갑니다. 예를 들면 이집트에는 이슬람뿐 아니라 기독교, 콥트 교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무슬림이 대부분이어도 불교도도 있고 기독교도도 있습니다. 필리핀이나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 유럽에서는 엄청나게 큰 이슬람 커뮤니티를 볼 수 있으며 슈퍼마켓이나 청과물상은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테러를 유발하고 배타적이며 폭력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폭력 당하고 차별 받습니다. 또 다른 이미지로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이며 낙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중동에는 유목민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목민족이며 통일적 왕조를 세운 나라는 이란 밖에 없습니다. 보통 부족 국가 형태로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에서 중동 국가에 대해 전근대적이며 후진적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럽이야 말로 이슬람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습니다. 5~15세기까지 중세시대 암흑기가 1,000년 동안 이어져 학문의 불이 꺼집니다. 그 후 르네상스 시대가 오고 그리스-로마 문명이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그런데 부활을 위해서는 문학이든 수학이든 과학이든 뭔가 텍스트가 필요한데 그것을 보존한 유럽 국가가 없었습니다. 그 때 아랍 세계에서 그리스-로마 문명의 정수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가 15, 16세기에 유럽에 전수하여 르네상스가 가능했습니다. 이란, 시리아 등의 석학들이 유럽 르네상스의 스승들입니다. 특히 엄청나게 많은 학자들이 이슬람에 있었습니다. 그 중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이븐 시나(Ibn Sīnā) 1,000년 전 사람이지만 이 사람이 후학을 위해 쓴 교과서를 그대로 지금 공부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합니다. ‘알 콰리즈미(al-Khwārizmī)’는 수학자로서 알고리즘과 대수를 창안합니다. 이런 사람 외에도 화학과 물리학 분야의 학자들이 있었고 이들이 없었다면뉴튼(Isaac Newton)’을 비롯한 근대 유럽 과학도 불가능했다는 것이 근대 역사학자들의 판단입니다.

 

이슬람에 빠지지 않는 화두가 여성입니다. 코가 잘린 아프가니스탄 소녀 사진은 많이 회자됩니다. 이 부분은 아랍 세계나 이슬람 국가가 많이 개선해야 할 부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여성에 대한 탄압 기재로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얼굴을 못 보이게 하는히잡이나차도르’, ‘부르카등이 있습니다. 눈만 내 놓고 완벽하게 감싸는 것이부르카입니다. ‘명예 살인은 여동생이 가문 허락 없이 자유 연애를 하면 오빠나 아빠가 죽여도 되는 것입니다. 기타 일부다처제 등으로 이슬람은 여성을 억압하고 구속한다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 같습니다. 코 없는 소녀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인데 시댁 식구에게 대들었다가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은 일반적인 이슬람이 아니라 탈레반(Taliban)이 장악한 나라입니다. 탈레반은 무슬림 형제단보다 훨씬 과격한 무장단체입니다. 이단에 가까운 사람들이 테러를 저지른 셈입니다. 그러면 히잡이나 차도르, 부르카는 어떤가요? 코란에는 여성들이 정숙하기 위해 쓰라는 구절이 있지만 현대 남성위주의 사회로 들어와 과대하게 해석된 경향이 있습니다. 무하마드는 이것을 강제하지 않고 권고 사항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의무로 해석하여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중동 부자들은 처가 세 명, 네 명씩 있어서 여권에 위배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코란에 일부다처제가 나오지만 방어적 논리가 있습니다. 코란에서 일부다처, 4명까지 둘 수 있다고 썼던 시기에는 일부일처, 일부다처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기였습니다. 부족장들에게 처가 10명이 있기도 한 시대였습니다. 사실 4명까지라는 것은 4명으로 제한한 셈입니다. 코란이 의외로 여성 보호 장치가 많다고 합니다. 이슬람교가 여성 억압하는 종교만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1,000년 전에 코란에 여성 상속 권리를 보장하여 부모가 죽었을 때 상속 재산을 분배하는데 아들은 딸보다 2배로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 차별적이지만 역으로 이미 그 시절에도 아들의 1/2만큼은 여성 권리를 보장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대통령 선거 때 여성 투표가 가능해져서 의외로 많은 이슬람 나라가 여성 참정권도 많이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 억압도 탈레반에 의해서 확대 해석된 경우가 많습니다.

 

자스민 혁명부터 이슬람 사회까지 하고자 한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책이 나온 시점과 자스민 혁명이 한창 이슈가 되었던 시점에서 지나서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57개국, 13억 인구의 이슬람 국가가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

 

김우희 연구원(whkim@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