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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4년 2호]경영자독서모임: 화첩기행 5
발간일 2014-07-15 첨부파일 MBS.jpg

[경영자독서모임]

 화첩기행 5

 (김병종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

이 원고는 2014616일 김병종 님의 MBS 강의를 바탕으로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원(aSSIST)와 산업정책연구원(IPS)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절대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교육심리학에서 한 사람의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게 대체로 13세까지의 체험이라고 합니다. 13세 무렵 전까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부모님 밑에서 양육 되었고 무슨 음식을 좋아했으며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고 심지어 가족으로부터 주로 어떤 언어를 나누면서 살았는가. 사랑과 어떤 긍정의 따뜻한 언어 속에서 자랐는가? 아니면 갈등과 혹은 적대적인 긴장감의 언어를 주고 받으면서 살았는가? 이것은 상당히 어떤 면에서는 한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가끔씩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이 13세 이전까지의 체험이 내 평생의 자료가 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연자에서 실이 풀려 나와서 멀리 창공에 연이 떠오르듯이 나이가 들어서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어렸을 때의 체험 인자들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저의 경우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해 봅니다.

그림 그린 게 이제 꽤 연조가 되어서 그 동안에 몇 번 주제가 바뀌고 했는데 초창기에 했던 것 중에는 바보 예수라고 하는 연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생명의 노래라고 하는 것을 한 20여 년 했는데 이런 주제의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역시 따져보니까 13세 이전까지의 시공간 속에서의 농축된 체험이 풀려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글과 그림을 오버랩 시키는 저런 형태의 책이 나오고 또 신문 연재를 하게 되고 하는 저 간의 사정도 보니까 어렸을 때의 문학 소년적인 나날들의 체험이 녹아서 나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교육심리학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정말 13세 즈음, 이 전까지의 경험이 정말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더 나아가서 저는 가끔 , 내가 참 아직도 미성숙의 인간이구나하는 것을 느끼는 때가 참 많고 내 안에 13살의 어린 아이가 그대로 살아있구나. 우리가 시간을 길이 개념으로 봤을 때는 30, 40, 50년이 굉장히 긴 수직 혹은 수평적인 개념으로 다가오지만 컴퓨터 메모리 칩 같은 두뇌에서의 공간과 지각 개념으로 보면 지극히 짧은 거리 속에 그게 다 농축된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교육학, 교육심리학의 이론이 저에 대해서는 최소한 맞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시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조금 남다른 재능까지는 안되지만 어떤 재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 그리면서 살려고 그랬던지 그래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어렸을 때 체험이 조금 유니크하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눈을 감지 않아도 이렇게 몇 가지 그림이 이렇게 떠오르는데 첫째는 아주 질펀하고 흐드러진 자연입니다. 제가 이제 생명의 노래라고 하는 주제로 이렇게 쭉 그림을 그려오게 된 연유를 살펴보면 예컨대 어렸을 때는 만발하게 흐드러진 생명에 대한 지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아스팔트 킨트가 되어서 이 철근과 콘크리트, 인공 조명에 드라이한 공간 속에 삶이 담기면서 13살 이전까지의 체험했던 그 질펀한 자연에 대한 희구 같은 게 일어나서 실제는 못하더라도 붓 끝에 담아서라도 이 생명의 아름다움을 조금 노래하고 싶다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때는 정말 물질적으로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빈곤에 대해서 느끼기 어려울 만큼 자연의 풍성한 세례를 받은 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일종의 축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문 밖만 나가도 맑게 흐르는 강 그리고 억센 뼈대의 산, 그리고 옛날에 자운영이라는 보라색 꽃이 있었는데 라벤더 빛으로 일망무재의 끝간 데 없이 펼쳐지던 환상적인 자운영의 기억들 이런 것들이 농축되어서 저한테 남아 있었습니다.

더구나 좋았던 것은 우리 때의 학교를 가끔씩 빠지는 것에 대해서 학교 측이나 우리 가정에서 크게 괘념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아침에 이제 도시락을 가지고서 학교로 출발하는데 오다 가다 그 황홀한 색채, 형태 이런 것에 정신을 뺏겨서 꽃 무더기 속에서 한 숨 달게 자거나 또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혹은 버섯을 따고, 또 논에 우렁이 있었는데 그 우렁을 따고 하면서 삼매경에 빠져서 집에 돌아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의문인데 왜 6일을 학교를 다녀야 되는 걸까? 이틀 정도 나가면 충분할 것 같은 이런 생각이 들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지만 누가 왜 어떻게 6일씩 학교를 나가게 만들어 놓고 우리는 그 제도 속으로 들어와 있는가? 어떻게 보면 진리처럼 굳어진 것의 시초는 굉장히 의외의 그리고 소박한 단서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코엘료라는 작가가 그랬다고 합니다. 이 철로의 길이, 1m 47cm인가 이게 도대체 전세계가 공통인데 이게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되어 왔습니까?’ 그랬더니 로마의 도로, 말 한 필인가 두 필이 끌고 갈 수 있는 그 폭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어쨌든 어렸을 때의 이 학교를 가는 대신에 들로 산으로 쏘다니고 낙락장송 속에서 이렇게 잠들다가 가끔은 보면 황홀하게 거의 환각적으로 아주 오색 영롱한 닭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도 봤습니다. 또 너무나 아름답게 불타는 노을 그리고 온갖 식물과 꽃들 이런 것에 황홀하게 시선을 뺏겨서 이제 해가 설핏하게 으슬으슬 추워져서 잠을 깨고 이렇게 보면 시시각각 사위의 풍경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굉장히 유심히 보는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자연을 유심히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그리워한다, 자연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 문명의 도시에서 가끔씩 이기적인 목적으로 위로 받기 위해서 대 자연 속에 들어갔다가 그냥 일별하고 쉬다가 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학교를 안 가고 계속 그 속에서 지내다 보니까 굉장히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유심히 보면 처음에 형태가 보이게 됩니다. 그 다음에 더 유심히 보면 생태가 보이게 되고 생태를 이해하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는 이런 것을 제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어렸을 때 떠오르는 그림 중의 하나가 작은 교회당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렇게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날, 마른 얼굴로 벽에 기대어서 저를 보시더니 오늘 밤에도 나갈래?’ 그래서 저는 오늘 밤에 영화 보러 가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 영화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밤에는 안 가면 안 되겠냐고 그래서 안 되겠다고 그랬더니 그럼 그렇게 하라고 그러면서 마른 볼 위로 두 줄이 물이 이렇게 흘러 내려서 , 왜 저러시지그랬는데 다음 날 새벽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상여가 이제 나가는데 지금 젊은 분들께서는 상여를 말로만 들으셨겠지만 상여의 꽃 무리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색이 먼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상복을 입었는데 땅에 끌릴까 봐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것을 올렸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어쨌거나 이 작은 교회당을 지나서 이제 골목을 지나서 푸른 보리밭 너머로 상여가 꽃망울이 되어서 이렇게 가는데 거기에 이제 저는 그 상여 문화가 참 아름다운 마지막 보냄의 양식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지금은 그냥 종합병원 영안실에서 이렇게 까만 옷들 입고 운구를 처리하니까 조금 아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어렸을 때 보니까 그 푸른 보리밭 위로 둥둥 떠 가는 꽃망울, 그러면서 그 게 무겁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상주 꾼들이 메고 맨 위에는 일종의 죽음의 노동가처럼 독려하는 소리를 합니다. 창을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그 전 날 누가 작사 작곡을 했는지 그 생애의 필모그래피를 거기서 짧게 이제 하는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이 아무도 안 계시는 것 보니까 저 같은 체험을 못 한 것 같습니다. 대체로 이렇게 합니다. ‘어노. 어이 가리. 어노어노라는 것은 일종의 노동요의 힘을 주기 위해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지국총같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쨍그랑, 쨍그랑하면 어렸을 때의 죽음, 어디론가 가는 것이구나. 어디로 갈까이런 생각을 하면서 몽환처럼 멀어지던 상여의 소리가 카랑카랑 잠겨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색을 쓰며 살 운명이었는지 이 모든 게 이렇게 색채의 덩어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러니까 바보 예수의 기점이 되었던 시골의 작은 예배당, 하얀 옷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손목에 이끌려서 교회당에 들어서면 겨울이면 밖에 하얀 눈이 폴폴 내리는데 무쇠 난로 위의 주전자가 수증기를 내며 푹푹 끓고 평생을 농사일을 하면서 뼈 마디가 굵어진 농부 그리고 그 앙상한 어깨 이런 것들을 보면서 감수성이 예민했던 저는 어떤 종교로서보다도 한 문화라고 합니까? 이렇게 참 그게 와 닿는 것 이었습니다. 지금도 서울의 대형 교회에 가면 잘 적응이 안되고 낯선 게 어렸을 때의 그런 체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자연을 유심히 보고 그 다음에 이제 자연의 생태를 보게 되면서 ,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라. 기뻐하라 하는 게 여기 적용되는구나이렇게 하면서 어린아이의 나중에 보니까 진화냐, 창조냐 하고 논란이 많던데 아예 창조에 대한, 어떤 인격 혹은 신격이 이것을 다 만들었구나 하는 공감 같은 게 확 오게 되었습니다.

왜냐. 천국과 지옥 못지않게 어린아이의 정말 경이롭고 놀라웠던 것은 그 검은 두터운 동토를 밀고 정말 그 샛노랗게 올라온 여린 꽃들, 연두색 잎들 이런 것들이 저는 거의 기적처럼 경이롭게 이렇게 이제 다가왔고 이 모든 생명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원리가 사랑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유추를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학적인 어떤 기초나 이런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생명을 영위하는 것이구나.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이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지고지난한 명령어이고 심지어 대단히 radical하기까지 한 언어라는 것을 제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학교에서 일한 지 서른 한 두 해가 되었는데 서로 사랑하라 라고 하는 것을 별로 삶 속에 적용시켜 보지를 못했습니다. 준엄하게 꾸짖거나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질책하는 것 이것은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했는데 서로는커녕 나 스스로를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요즘에 느끼면서 어쩌면 나는 자라지 않는 미성숙의 13살 아이가 아직도 이렇게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을 보면서 이 생태를 보고 나니까 어린아이의 나만이 잘났고 얘네들은 하잘것없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어떤 이런 것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후에 보니까 이제 1970년대 학번들 중에서는 두 가지 책을 꼭 가지고 다녀야 됐는데 하나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라는 사람의 소유냐, 삶이냐하나는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라는 의사의 책이었습니다. 이것을 꼭 이렇게 끼고 다녀야 미팅도 들어오고 그랬는데 디팩 초프라 라는 사람이 인도의 의사인데 하버드 의과대학에 나중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동양 의학, 서양 의학을 정말 통합시키면서 어떤 철학자 적인 관점에서 저술을 많이 한 사람인데 이 분의 특징이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만물에는 지성이 있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물도 이렇게 마시면서 목마른데 나에게 너무나 고마운 물. 정말 석관수처럼 맑기도 하구나하고 마시는 것과 그냥 마지못해서 짜증스럽게 마시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게 서설이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이제 그림 배경 조금 설명하려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그 어렸을 때의 지능 혹은 지성을 가진 존재들, 나무나 꽃잎도 지성을 가진 것 같고 지능을 가진 것 같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친구가 될 수 있고 정말 유심히 보고 정감을 나눕니다.

중국에 이제 산수화라는 장르가 일천 년 동안 다양하게 발전되었는데 첫 단추는 대경생정이라고 합니다. ‘대경경치를 보고 생정정을 나눈다, 감정 이입을 한다, 친구와 같이.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도시에서 살지만 이 자연을 보고 그렇게 정을 나누고 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이 풍요로워 질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먼저 합니다.

이제 교회당에 가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라이 말씀이 딱 걸리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풍성한 삶이 풍성한 소유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고 빼어난 미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도 않고 적어도 뛰어난 두뇌를 주기 위해서 온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문학 소년, 문학 청년 시절을 지나오면서 계속 이것을 되새김질 해보면서 이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게 무슨 뜻인가 고민을 하다 하다가 신학자한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하고 드라이하게 답변을 하는데 물론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풍성한 삶이라고 하는 것은 풍성한 감성의 느낌의 삶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제 일본의 한 대학하고 오랫동안 교류를 하는데 그 분들이 그렇게 풍성하게 느끼고 그 때마다 표현하고 하는 것 참 잘합니다. 물을 한 잔을 먹어도 오이시데스네그러고 스바라시그럽니다. 처음에는 , 이게 왠 남자들이 경() 한가했는데 그게 아니고 자연과 사물을 보고서 너무나 아름답구나, 너무 멋있다했을 때 생각으로뿐만 아니라 언어로 표현을 했을 때 입에서 가장 가까운 자기의 대뇌에서 듣고서 공명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하고. 이래서 그게 건강에도 굉장히 좋다는데 그래서 우리가 풍성한 삶을 위해서는 풍성하게 느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겠다, 감성의 문을 열고.

주로 10, 20대에는 풍성하지 말래도 그냥 깔깔 웃고 저것 봐’, 애기들은 엄마, 하늘은 왜 푸르러요? 새는 뭐라고 지금 말하는 것이죠?’ 질문이 많습니다, 느낌의 촉수가 만발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이제 풍성한 삶에 대해서 우리가 가꾸지 않고 방치해 버리면 감성의 경화 증상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여성이 저에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이냐고 한탄해서 뭔가 하고 들어봤더니 그 여성이 제 바로 위의 누님입니다. 이공계 계통의 자영업을 하시는 분하고 결혼을 했는데 이공계 쪽 전공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이 굉장히 감성적이고 아주 예술적인 감각도 뛰어나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참 대단하다 할 만큼, 물론 저희 누이도 그런 면에 이제 반해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한 20년도 같이 못 살았는데 어느 날 안개 비가 내리는데 문을 열고 나왔더니 마당에 목련이 확 피었는데 너무나 꿈처럼 목련이 밤 사이에 피어서 누구를 부르겠습니까? 남편을 불러서 빨리 좀 나와 보라고 했습니다, 목련이 이렇게 피었다고. 그랬더니 나오면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신문 젖으니까 가져오라고 합니다, 옛날에 그렇게 꽃을 빙자해서 저녁 노을을 빙자해서 몇 장씩 편지를 쓰던 분이. 그러면서 이럴 수가 있냐고 그러는데 우리 한국 분들이 근면하고 참 좋은 면이 많은데 이 감성을 표현하고 이제 전문적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 예술적으로 감상하는 것도 그렇고 이런 데에 우리 글쎄 입니다. 오랜 세월이 유교적인 영향인지 우리가 조금 그 부분에 있어서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감성을 가꾸고 표현하는 것, 우리 미학에서는 이제 삶을 일상의 삶과 심미적인 삶으로 나눈다고 그럽니다. 일상의 삶은 애 낳고 학교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이렇게 쭉 늙고 병 들고 이런 것에 집중하는가 하면, 심미적인 삶이라는 것은 바로 목련이 밤 사이에 저렇게 피었구나. 도대체 우리 집 마당에 저 검은 땅에서 저 하얀 꽃이 어떻게 올라왔단 말인가하고 5분을 유심히 보면은 불가사의한 생명의 섭리에 대해서 눈물이 글썽해 진다고 합니다. 9분인가 10분을 보면 글썽해진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하는데 워낙 완악하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자연의 섭리 이런 것에 대해서 감동, 공명하면서 그것이 주는 기쁨, 위로를 이런 것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보면서 상여가 나가면서 가네, 가네하던 간다고 하는 방향성, 장소성 이런 것이 저는 때가 되면 이 꽃과 나무처럼 다시 움터서 이렇게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상상도 해 봅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해서 꽃은 다시 피고 새는 다시 오는데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학교 갔다 오면 이제 우리 집 앞에 공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거기서 모여서 노는데 해가 설핏하면 각자 창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면서 아무개야. 아빠 오셨다. 어서 들어와라.’ 이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나서 텅 빈 하늘을 보면서 정말 아버지의 부재, 이게 저 소리를 나도 한번만이라도 듣고 싶다 했는데 그러면서 이제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 아버지. 맛있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애들은 이렇게 의례적으로 기도를 하는데 문득 내게도 실존적인 부권을 가진 대상이 필요하다. 저 예수님을 내가 그렇게 해볼까하면서 다시 바라보니까 또 유심히 보니까 모든 화집에 나와 있는 그리고 성당이나 교회에 걸려 있거나 그려져 있는 예수 상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형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찰톤 헤스톤(Charlton Heston) 같은 미끈한 백인 미남자의 모습으로 나오거나 화집 같은 데에서도 전혀 정서적으로 내가 기대고 나의 부권을 의탁할 만한 그런 친밀감이 없는, 그래서 그렸던 게 이제 바보 예수입니다. 바보스러운 남의 죄를 위해서 죽어주신 분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어떤 지엄한 이런 신적 권위의 존재라기 보다는 내가 기댈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바보 예수전시를 했는데 신성 모독으로 꽤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37살이 되던 가을에 화실에서 연탄 가스에 중독이 되어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는지 문학 소년, 문학 청년 때 이상하게 그렇게 그런 상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하얀 시트가 깔린 서울대병원에 입원해봤으면. 그러면 이제 아리따운 여학생이 꽃을 들고 들어오겠지이걸 자꾸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시트는 하얀 것은 분명한데 내 양 팔에는 주사 바늘이 네 개인가 다섯 개 줄래줄래 꽂혀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게 이제 시간이 오래 되니까 무슨 꿈을 꾸게 되냐 하면 , 주사 바늘이 없이 아침을 한번 맞아 봤으면 그리고 주사바늘이 없이 햇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운동장 같은 곳을 하염없이 걸어봤으면이런 생각을 할 만큼 이제 단순해졌습니다.

그리고 퇴원을 해서 우리 관악산 교사 아파트 살 때 인데 2월 말쯤인데 뒷산을 몇 사람하고 오르는데 살얼음이 채 녹지 않은 속에서 노란 꽃이 하나 이렇게 피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제가 그냥 사람들은 앞서서 가고 뒤에서 대성통곡을 할 뻔 했습니다. ‘비로소 이 생명의 경이로움이 내 눈에 보이는구나. 어렸을 때는 친구로 가까이했던 자연이 그 접점이 끊어져버리면서 떠났던 그 자연, 그러고 보니까 이 세상이 창조주의 생명 미술관이구나. 생명의 노래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입니다.

대학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자꾸 이렇게 상상을 해 보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은 도대체 뭔가. 또 속으로 저 친구, 그림 그리는 친구가 뭐 그렇게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생명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를 하나. 주제 넘다이렇게 하지 마시고 저의 사적 비전입니다. 이게 사적 비전이 공적 논리화 될 이유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라고 그냥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하게 무슨 상상이 드는고 하니 세계의 차원에는 생명이 있다. 첫째는 어머니 모태 안에서의 편안하고 물이 있는 그런 둥근 모태 안에서의 열 달의 생명이다. 둘째는 70년 남짓은 옛날 말이고 지금은 100년 안팎이라고 하는데 100년 안팎의 지상에서의 삶이 있다. 세 번째는 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시간 밖에서의 삶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고 하니 제가 어렸을 때 문··철 다양한 책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틀어박혀서. 독서 연령에 맞지도 않는 책을 게걸스럽게 엄청나게 많이 읽어댔는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책을 읽었는데 이것이 지금 이 생의 끝이라면 그만큼 우주를 상상해보고 엄청난 비전을 그려보고 꿈 꾸고 사랑하고 후회하고 갈망하고 했던 이 존재가 여기서 끝이 나 버린다면 이것은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거의 생각의 속도로 움직이고 육체의 제한을 벗어버린 어떤 삶이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해서 세 개의 삶을 생각을 하고 우리 생명의 노래를 하면서도 언젠가 세 번째 삶, 생명에 대해서도 표현을 해 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유심히 보는 것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형님의 결혼 40주년 기념식에 가서 한 분과 40년간 산 소감을 여쭈어보니까 뭐라고 이야기하시는가 하니 그 오랜 세월 살았는데 아직도 상대방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저런 면이 있구나하고 요새도 새로 발견한다. 그러니까 며느리, 아들 할 것 없이 정말 표현을 멋있게 하셨다. 정말 아름답습니다라고 하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을 했습니다. 유심히 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봤다. 한 사람을 40년을 살았는데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피상적으로 본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만 자연이건 사물이건 인생이건 유심히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겠다. 그러면서 삶 그 자체를 오브제로 해서 각자의 삶의 그 자체, 삶이 거느리고 또 짓고 있는 거푸집, 명예, 재산, 학식 이런 것 말고 삶 자체를 오브제로 해서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 수 있다면 참 좋겠구나. 이렇게까지 연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한번 머리 속에서 조립을 해 보시면 될 것 같은데 그런 것을 어디에서 느끼느냐? 여행지에서 특히 느낍니다. 쿠바에 가니까 정말 우리보다 8, 10배 못 사는 분들인데 , 이 사람들은 삶 자체를 오브제로 해서 내일 일은 모르겠는데 오늘은 일단 신이 내게 준 생명을 충분히 즐겨야 되겠구나라는 어떤 태도 혹은 각오 같은 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 보이는데도 춤추고 노래하고 시장은 있는데 빈부는 없고 학교는 있는데 석차가 없는 이런 일종의 다른 혹성의 삶과 같은 이런 것을 보면서 , 이 짧은 삶을 너무나 무겁고 심각하게 살았구나. 너무나 비교하면서 살았구나. 비교적 안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의식 속에서도 짓누르는 어떤 부분들이 있구나. 왜 이 사람들처럼 이렇게 삶 자체를 조각가가 끌과 망치를 가지고 자기 앞의 오브제를 쪼아 내듯이 어린아이가 초콜릿을 아껴 먹듯이 나는 나의 삶을 그렇게 아끼고 정성스럽게 조각해 오지 않고 그 부수적인 상황들, 이런 것에 너무 집중했는가이런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택시를 탔는데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 에어컨도 안 되어 있는데 기사 이 친구가 계속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거기는 스페인어를 모르면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데 그 친구는 영어를 조금 하고 그래서 무슨 특별한 좋은 일이 있느냐 했더니 없다고 합니다. 여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느냐 했더니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노래를 계속 부르는 거냐. 무슨 좋은 일이 있냐그랬더니 무슨 질문을 그렇게 하느냐. 즐겁지 않느냐?’ 그래서 더워죽겠다그랬더니 햇빛이 이렇게 좋고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공해가 엄청나게 뿌연데 카리브는 저렇게 아름답지 않느냐그것은 사실입니다, 카리브. ‘하루에 열 두 번 색깔이 변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자기는 즐겁다. 그것 아니라도 그냥 즐겁다.’

그래서 제가 문득 내가 정말 어렸을 때는 그렇게 했는데 왜 이렇게 저런 무욕하고 투명한 기쁨을 잃어버렸는가. 왜 내 주체적인 삶이 가끔 흔들릴 때가 있는가? 왜 즐겁게 잘 선생 일을 하다가 조동성 선생님이 딱 나타나면 아니, 저 분은 도대체 얼마나 머리가 좋으면 27세에 서울대학 선생이 되고 하버드를 나왔을까왜 이런 생각을 하나. 그냥 안녕하세요 그러고 같이 차 마시면 될 텐데 말입니다. 좁은 땅에 살면서 비교하는 의식 이런 게 나도 모르게 찌들려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수하고 무욕한 아름다움을 회복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일상의 삶의 심미지수를 조금 높여야 되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여행에서 돌아와 가지고 일부러 이렇게 어떤 심미적 지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그 날 창 밖의 분위기, 날씨, 또 마음 이런 것을 엮어서 CD를 굉장히 정성스럽게 이제 고르는데 제 아내는 왜 저렇게 저 사람은 아침마다 뭘 하나 할 것입니다. 그런데 CD를 한 장 골라내도 날씨에 맞춰서 이렇게 하면서 이제 빵을 잘라먹고 하는데도 음악하고 음률하고 섞이면서 정말 이게 음악을 잘 고르니까 커피도 더 맛있고 다른 것은 호사를 못 하는데 커피는 브라질에서 사 오고 북 아프리카에서도 사오고 이렇게 하면서 사온 게 많으니까 그러면서 심미적인 삶을 가꾼다는 것, 감성의 삶을 가꾼다는 것 이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구나. 양으로 생명을 얻듯 더 풍성하게 얻기 위함을 저는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해 보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 왜 우리가 이렇게 풍성한 삶에 어색한가? 그것은 우선 그런 재료도 조금 부족하고 모델 학습이 조금 덜 된 것 같습니다. 일본만 해도 미술관이 만 개가 넘습니다. 박물관이 4,500개에서 5,000개 사이로 되고 우리가 미술관이 300개가 될까 말까 입니다. 그래서 취학 이전의 아동들이 그 미술관을 엄마 손을 잡고 들락거리면서 거기서 관계 학습을 한다고 합니다. 미술품과 나와의 관계, 같이 관람하는 분들과의 관계. 폐를 끼치지 않아야 되겠다. 시끄럽게 하지 않아야 되겠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어떤 심미적 삶을 기를만한 이런 여건과 정황이 굉장히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쪽에 기울이는 게 참 좋겠다 하는 것과 제가 또 하나 느끼는 게 누군가도 이렇게 글에 썼던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잘 사는 방법 중에 자연에서의 삶의 분량을 늘리는 것이다. 이것 참 호사한 이야기 같고 쉽지 않지만 6:4, 7:3으로 자연 속으로 비중을 조금 옮겨가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지금 문명의 시간을 다 살고 있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인의 평균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3.7시간인가 이러고 인터넷하고 스마트폰 이렇게 하는 시간이 7-8시간 정도 그러니까 잠 자는 시간 외에 11시간을 문명의 기기와 함께 있다 보니까 문명의 시간표를 따르게 되고 자연과 자꾸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유심히 봤던 그 자연. 그 위로와 평안을 얻고 기쁨이 되어 줬던 그 자연의 시간표와 자연적으로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명의 기기 속에 이제 시간을 뺏기니까 모든 인간관계도 재구성되고 우선 자기 삶이라고 하는 것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바쁩니다, 사실. 10시간 이상을 그렇게 TV보고 인터넷 보고 하니까 입니다. 물론 그 자체가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다 보니까 2년에 3번을 만나면 상당히 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문예비평가 중에 죄르지 루카치(Gyorgy Lukacs)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문학 평론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쉬운 말을 어렵게 썼습니다. 뭐라고 했는고 하니 문명의 과도한 속도. , 정신의 진보적 타락조금 어렵기도 합니다.

우리가 IT 강국이다 보니까 약간 혹은 상당히 과도한 속도에 지금 편승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스마트폰이 휘어지고 안에 내장이 투명하게 다 보인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처럼 던지기도 하고 물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냥 통화하고 문자 주고 받았으면 좋겠는데 내장을 우리가 꼭 그렇게 봐야 될 필요가 있습니까? 문명의 과도한 속도인데 이것이 우리가 속도 열차에 편승을 해 버리면서 자연하고 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은데 이제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무슨 시대가 오는고 하면 결혼은 아무나 하나의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봤더니 이런 큰 홀에다가 컴퓨터 판이 있어서 들어가면서 질문을 딱 해서 이렇게 하고 가면 아로마 향 같은 것이 점으로 자기를 안내합니다. 그래서 저 뒤에 앉아 계시는 여자분 쪽으로 저를 안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은 너무너무 잘 맞는 사이입니다. 이제 소개팅 이런 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은데 쭉 보니까 훌륭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음주운전에 걸린 게 나오고 외할머니가 무슨 간염이 있고 정보가 다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에 대해서 망설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결혼은 아무나 하나의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잘 맞고 너무너무 우수하고 너무너무 완전하면 좋은 커플이 되는 것입니까? 신의 섭리는 서로를 모르는 가운데 매료되고 정말 부족한 부분을 가서 채워주기 위해서 이 부족한 인생, 나약한 삶을 서로 부축이면서 가도록 어떻게 보면 되어 있는데 서로 완벽하게 잘 맞는 조합을 해서 안내를 한다. 이것 문명의 과도한 속도가 아닐까? 그래서 문명의 과도한 속도를 우리가 그 속도 열차에서 내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비판적으로 바라 볼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팔당에 조그마한 한옥이 하나 있습니다. 해가 비치는 집이다 하는 뜻인데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핑핑 눈이 돌게 과도한 속도에 타고 있구나 하고 있을 때는 슬쩍 내려서 그 곳으로 갑니다. 그러면 12일만 있다 와도 일주일 이상 있다 온 느낌이 듭니다. 시간의 질량은 누구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 봤을 때 약 250년을 살았을 것이다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엄청난 양의 저술을 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옛날 분들이 평균 수명이 40 몇 세여서 안타깝다. 단명했구나이렇게만 이야기 할 수 없는 어떤 풍성한 부피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은데 한옥에 가서 그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새벽에 이렇게 컹컹하는 골목의 개 짓는 소리에 희뿌연 하게 날이 밝아오면 밖에 이렇게 바라봤을 때 저는 창조론을 믿는 사람인데 창조의 태엽 시계가 매일 같이 자동으로 풀리고 감기는 게 아닌가? 오늘은 정말 은빛 실 속에 새로 창세되는구나이런 느낌을 가지고 나가서 이렇게 야생화 하나를 보는 것입니다. 봤을 때 발견되는 꽃의 기쁨을 저에게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아까 디팩 초프라가 만물은 지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 이 아름다운 꽃은 누군가 보아주기 위해서 여기 홀로 피어있구나하는 느낌을 가지면서 참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성경을 읽다 보니까 창조주께서 보기에 좋더라. 좋더라. 심히 좋더라이 구절을 읽으면서 , 이 창조주께서 굉장히 외로우시구나나는 제가 보기에도 너무 좋은데요하고 공명을 해 드려야겠다. 이것이 나로서는 하나의 예배일 수도 있겠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 어머니에게 오래 전에 했다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야단을 들었지만 이것을 공감해드리는 것, 함께 하는 것 이것이 참 창조주에게 헌신하는 하나의 기도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이게 그림을 그렸는데 , 정말 잘 그렸구나. 보기 좋구나이러면 얼마나 이게 우스꽝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한시적인 지상의 시간에 이렇게 아름다운 게 많은가? 이렇게 아름답고 섬세한 생명체들이 많은가?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바라보게 함이 아닌가? ‘내가 이름을 불렀을 때 너는 내게 와서 꽃이 된다고 어느 시인은 이야기했지만 언어라는 것은 굉장히 허약하고 부서지기 쉽습니다. 언어보다 저는 더 본질적으로 내가 너를 바라봤을 때 너는 내게 와서 사랑이 되고 생명이 온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렇게 많이 그렸는데 모든 그림에는 서로 바라봄이 있습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게 나옵니다. 전부 다 몸을 틀건 올려다 보건 전부 그게 나옵니다. 전부 그게 나와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많은 분들이 단 한 분도 그것을 발견해주는 분이 없습니다. 제가 제 그림은 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그러면 어디요? , 그러네이렇게 이것 참 쓸쓸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 드렸듯이 책을 틀어박혀서 읽는 일, 작은 교회당에 가면서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 상상해 보는 일, 그리고 자연과 친구가 되어서 유심히 바라봤던 일 이것이 소년적인 것으로 끝나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제 안에서 풀려져 나오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교육심리학자가 했다는 ‘13살까지의 체험이 평생을 좌우한다라고 했던 것은 적어도 저에게만은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글과 그림을 버무린 형태의 시도를 어느 신문에서 한달 정도만 한번 해보자고 해서 처음 있는 형식이니까 해서 했는데 반응이 괜찮다해서 3년 반을 하고 책이 여섯 권인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보니까 그 다섯 번째 북아프리카 편을 가지고 독서를 하신다고 그래서 제가 물어봤습니다. 무엇을 하시는 분인가 했더니 경영을 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이 트래픽을 뚫고 경영이 얼마나 바쁘신데 책을 읽는 것, 이것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일본의 독서율의 1/8입니다. 거기는 일러스트나 만화 같은 것도 독서에 넣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 책을 읽고 있는 것,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이제 책을 계속 읽으면서 이것도 이제 어렸을 때 버릇인데 이렇게 정좌해서 책을 잘 읽지 않고 벽에 기대고, 눕고 아주 불량한 자세로 그 다음에 이런 책상, 야트막한 책상 여러 책상을 이제 공간을 조금 넓게 지금 마련을 해서 여기 저기 책을 쌓아놓고서 읽는데 그 중에 특히 여행에 관한 것, 이것은 여행지에서 사온 엽서, 여행 책자 이런 것을 골방에다가 막 쌓아놓고서 여행에서 끄적거렸던 것을 보고 스케치도 보고 지도도 보고 하다가 픽 쓰러져서 잠이 드는 것입니다. 5분 잔 것 같은 아침이 오고 저녁 먹고 내리 몇 시간을 그냥 읽어버리는 것입니다. 종으로 쭉 읽기 때문에 믿어질 수 없을 정도의 속도감으로 이게 이제 머리는 나쁜데 이것을 계속 하다 보니까 어떤 경지에 딱 올라서 광속으로 책을 읽고서 우리 조교 선생한테 그 책 137 페이지 위 부분에 이러이러한 문장을 조금 쳐서 조금 보내보라고 하면 요즘은 이제 그게 많이 틀리는데 얼마 전까지 탁탁 들어맞는 그런 쾌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읽었을 때 이것이 또 여행과는 달리 또 다른 풍성한 삶을 준다 하는 것입니다. 여행은 직접 체험이지만 내가 문 밖을 나와서 다른 세상 사람들과 섞이고 다른 관심사 속을 기웃대는 것, 다른 음식을 먹고 이러면서 내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이지만 책을 읽는 것이야 말로 더 그렇다. 문명의 시간과 친해지면서 책을 읽는 것도 우리가 자꾸 경시하게 되는데 이것은 버려서는 안될 유산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이제 속도감을 타니까 저는 어떤 현상이 있는고 하니 책으로 다 해결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골프 같은 것도 한번도 안 해보고 운동하는 것도 없습니다. 운동을 왜 안 하느냐? 어렸을 때의 우리가 뛰고 축구하고 그러면 어른들이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이놈들, 배 꺼지는데 왜 쓸데없이 뛰느냐이것은 나쁜 것이구나. 뛰거나 움직이면 생산성과 노동의 어떤 수단이어야지 쓸데없이 뛰는 것은 일종의 죄의식이 딱 박혀가지고 어쩌다가 런닝머신 같은 데에서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굉장히 죄스러운 것입니다.

금방 내려와야 되고 이렇게 하는데 놀라운 것은 이제 운동이 좋다 그러면 운동에 관한 책을 이렇게 사 모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읽고 자전거 타는 게 좋다. 아까 제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남다른 재주가 있습니다. 위태위태한 자전거 코스를 다 타는 것입니다. 등산이 좋다. 동네 산 뿐 아니라 히말라야 등정기까지 몇 권을 사다가 쭉 읽으면 대체로 저녁 먹고서 예를 들어서 히말라야에 관한 책을 몇 권을 읽으면 새벽 한, 두 시쯤에 네댓 권 읽으면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면서 아주 노곤한 느낌입니다. 소식이 좋다고 그래서 또 소식 건강의 비법, 이시하라 인가 하는 사람이 많이 썼습니다. ‘11, 간헐적 단식, 소식만이 살길이다해서 간식을 먹어가면서 그것을 딱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허기가 지면서 소식을 한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학교 선생을 오래 하다 보니까 다양한 분야 분들을 많이 아는데 의사들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말을 하면 열이면 열 개그스럽게 받아들이고 한 사람을 화를 냅니다. ‘두 번째 들었는데 피지컬은 피지컬로 풀어야지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말입니다. 딱 한 사람의 의사, 신 모라고 하는 모 대학 의대 교수 하던 분이 딱 일리가 있다. 당신이 히말라야를 그렇게 23일로 힘들게 히말라야의 모든 책을 섭렵한 후 땀이 나고 히말라야에 빠졌다고 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고 했습니다. 바둑 기사 한 사람도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쨌든 이야기가 빠져 나갔지만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라는 것은 이렇게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까 12-13살 무렵에 읽던 것 중에는 문학 책도 많지만 금병매, 고금소총이게 고전은 고전인데 이것은 조금 다른 것이구나. 그래도 그냥 읽어 치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무렵에 아주 미남자 작가가 한 사람, 담배를 꼬나 물고 있는 사람이 이게 알고 보니까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라는 작가인데 어머니가 농아인가 그랬습니다. 알제리의 벨쿠르드라고 하는 아주 악성 빈민 산동네에서 낳아서 마흔 둘인가 셋인가에 세계 최연소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인데 잘 생기고 노벨상을 받아서 라기보다도 이 사람의 글이 제가 쓰고 싶었던 것과 같은 빛과 색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티파사라고 하는 로마 유적지의 바닷가의 아름다운 작은 촌락이 있는데 세상에나 입니다. 거기를 가보니까 첫 번째 생각이 괜히 왔네입니다. 늘 티파사를 그리워했습니다, 문학 청년일 때. 이름도 무슨 여자 이름 같고 몽롱하게 무슨 여성을 그리워하듯이 티파사를 그리워하면서 또 이방인의 구절구절도 다 외우고 그러면 안녕. 한동안 우리의 것이었던 여름의 태양이여이것도 그 구절을 온 데 친구들에게도 지인들에게 편지 쓰면서 맨 끝에다가 그러면 안녕하고서 한동안 우리의 것이었던이렇게 하고 했습니다. ‘개선문에 나오는 리마르크라고 하는 사람 문장을 흉내 내서 거기다 써 보기도 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다가 북 아프리카에 한번 가 봐야 되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알베르 카뮈의 현존,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지역, 어떤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살았길래 그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거의 수채화를 보듯이 글을 그렇게 써버릴 수 있었을까? 그래서 거기를 꼭 가봐야 되겠다 해서 이제 알제리 또 튀니지도 가봐야 되겠다. 튀니지는 왜 가봐야 되는가 하니 튀니지의 튀니지안 블루라고 하는 블루, 파란색 중에 별의 별 블루가 다 있는데 튀니지안 블루가 참 아름답습니다. 이것은 어떤 환경, 실제 하는 것 중에서 색깔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곳을 한번 가봐야 되겠다. 앙드레 지드(Andre Paul Guillaume Gide)가 자주 오고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가 왔다는 카페 데나트의 그곳에도 한번 가봐야 되겠다 해서 갔던 것이 이 북 아프리카 화첩 기행입니다.

그런데 나도 한번 가 봐야지하는 것이 여행하기에 쉽지가 않습니다. 알제리는 인민공화국입니다. 튀니지는 사회주의입니다. 모로코 정도가 이제 조금 관광지로서 이렇게 하는데 저는 불현듯 가야 되겠다 하면 가버립니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치밀하게 예약하고 이런 것을 안 하고 여행의 불확실성 속으로 이렇게 가 버리는 것입니다. 여행은 세계관을 넓혀 준다고 아까 말씀 드렸는데 그렇지만 다리 떨리기 전에 가슴 떨릴 때 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바나에서 한국 분 연세 드신 분들하고 이렇게 어울렸는데 같이 사진 한 장 찍으시죠그래도 싫다’, 어디 헤밍웨이가 왔던 카페 좀 가보죠그래도 귀찮다. 쉬어야 되겠다’, ‘여기서 한 장 찍자고 그래도 있는 것도 처치곤란이다. 곧 죽을 것인데 사진은 뭐 하러입니다. 참 그래서 정말 가슴이 마구 뛰고 이럴 때 여행을 가는 게 좋겠다.

여행이 좋으려면 또 세 가지를 갖춰야 된다고 합니다. 첫째, 돌아올 집이 있어야 되고 둘째, 가방이 가벼워야 되고 셋째, 가는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됩니다. 가는 사람이 마음이 안 맞으면 풍경이 아무리 좋아도 이게 그냥 김 새는 여행이 되는데 어쨌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로만 만날 만나서 낯선 시간과 사람들 속으로 평생 별로 섞여본 기억이 없이 만날 무슨 고등학교, 무슨 어디 해서 자기들 끼리끼리만 만나면 이렇게 되면 삶이 굉장히 단조로워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까 인생을 잘 사는 법이라는 것에 첫 번째가 그것 아닙니까? 한달 간 열심히 일을 하고 하룻밤 엄청나게 비싼 식당에 가서 마음이 맞는 사람과 더불어서 마음껏 담소를 하면서 밥을 먹어라. 젊을 때에는 마음이 안 맞는 사람도 어떤 목적을 위해서 함께 어울릴 수 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는 만나서 좋은 사람을 한번 더 만나기에도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라 라는 것 그리고 계절이 한번 바뀌기 전에 여행을 떠나라. 특히 하룻밤 자고 오는 여행을 하라. 자연의 섭리 속에 자기 삶을 반추를 해 보고 나도 언젠가 저 낙엽처럼 지는 때가 있겠지이러면서 욕심도 조금 내려놓을 줄도 알고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하는 것인데 미국에 있는 세계적인 암병동의 한국인 의사 분에 대해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미국의 병원에 오랫동안 근무를 하면서 보니까 미국인 환자들은 오면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나도 죽는다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환자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나는 안 죽는다이래서 우리가 자연을 보면서 그 순환의 섭리 속에서 반추 해 보기도 하고 이러면 좋겠다 입니다.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몰타 빙 돌면서 보니까 우리가 정말 너무나 많은 축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이제 떠나봄으로 해서 제가 객관화 되고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이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아까는 여행을 다니면서 썼던 이것은 이제 글입니다. 그런데 또 저는 아마추어로 글을 조금 끄적거려 봅니다만 여러분들께서도 혹시 시간이 되시면 글을 써 보는 것을 조금 권유를 드리고 싶습니다.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검증된 것은 읽고, 쓰고, 걷는 것이라고 합니다. 읽으면 40% 정도 뇌가 가동이 된다고 하고 TV를 보면 3% 정도 가동이 된다고 그러는데 쓰면 60% 정도 가동이 된다고 그럽니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제가 왜 자꾸 써보라고 그러느냐 하면 치매 예방을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확실히 이것을 글로 표현을 해 보면 뭔가 지평이 넓어집니다. 제가 알제리를 가서 차창에 비치는 풍경에서부터 저는 여행을 딱 비행기 타면서부터 쓰기 시작합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걸려도 구애 받지 않고 정말 종군 기자처럼 볼펜을 몇 개씩 걸고 써 갈기는데 그러면서 비로소 내가 이 지역을 여행했다 그러면 이 지역에 대해서 스치면서 보는 것과 저녁 노을 속에서 저 도시가 어쩌고 저쩌고하고 음식을 먹어도 미각에 착착 감기는데 어쩌고 저쩌고하는 것과 그냥 휙 일별하면서 와 버리는 여행, 일별, 우리가 한번 쓱 보고 자연을 그냥 어디 다녀오는 것처럼 그렇게 와 버리는 여행은 가슴에 잘 와 닿지 않는데 내가 기록을 해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기록한 곳은 적어도 나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하는 것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북 아프리카에 관련된 독서모임이지만 전반적인 것을 쭉 조금 훑기 위해서 과거 그림들도 조금 가지고 왔습니다. ‘바보 예수라고 하는 작품은 육친적인, 친근한 이웃 같은 이런 모습으로 그려보고 싶었던 연작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이제 황토의 느낌, 이런 것이 좋아서 소년 그리고 말 이런 것을 그려 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꽃에도 눈이 있다. 그러니까 서로 눈과 눈이 바라보는 것, 굉장히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사물과 생명체가 바라보는 것을 많이 그렸는데 이것은 30대 때 이야기입니다.

스물 일곱인가 서른에 불의의 사고로 죽은 빅토르 최라는 러시아의 락 가수를 그리기도 했는데, 검은 하늘, 억압된 사회 분위기를 그렇게 표현을 해 봤습니다. 상해에 가서 김염이라고 하는 절세의 조선인 미남 배우의 그 미망인을 만나러 갔을 때의 느낌을 그리거나 베이징이 처음 열렸던 1983년도에 가서 아직 공산 이데올로기가 남아 있던 느낌을 살려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중국이고 이것은 이제 뮌헨에 전혜린이라고 슈바빙이라고 하는 뮌헨 거리에 옥토버 페스티벌이라고 은행잎이 노랗게 지던 때 저 사람이 하도 책에다가 Englischer Garten 앞에, 영국 공원 앞에 카페 제에로제(Seerose) 그래서 언젠가는 저 카페 제에로제를 가 봐야지.’ 역시 갔더니 대 실망 해서 글을 믿을 게 못 된다 했습니다.

낙락장송 속에서 학교는 안 가고 자연과 더불어서 함께 있던 모습인 제 유년적인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카리브 입니다. 하루에 12번 색깔이 변한다는 바다입니다. 여기 뛰어드는 소년은 물론 또 저의 자화상을 오버랩 시켜 놓은 것입니다. 정말 이 카리브의 물빛은 엄청나게 황홀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저 같이 이렇게 색채에 민감한 사람이나 그렇지, 갔다 와 가지고 이 카리브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 했는데 여행했던 분은 전혀 생각이 안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골프장이 좋은 데 그것 이야기를 자꾸 저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또 골프에 관심이 없어서 거기는 그렇게 좋은 게 있는지는 몰랐는데이렇게 했습니다.

이 카리브를 보다 보니까 이것을 정말 빨리 돌아가서 그림으로 그려 봐야 되겠다. 인상파 화가들처럼 아침, 저녁, 낮에 색깔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그려 봐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저기가 저렇게 색 색깔 물고기가 많느냐고 그러는데 물고기 하나도 못 봤습니다.

언제 우리 이런 데를 직접 가서 조금 설명을 드렸으면 좋겠는데 여기는 우리나라보다 1/6-1/7 정도 밖에 돈 가치가 안 하니까 얼마 들지 않습니다. 제가 가이드로 해서 한번 모시고 가면 좋겠는데 현장에서 한번 설명을 해야 되는데 그 물빛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입니다. 이게 아주 깨끗한 햇빛과 맑은 물이 부딪히면서 슈퍼 세라피라고 그래서 만성 관절염도 보름만 물에 담그고 있으면 낫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의 모습이고 저녁의 모습을 그려 본 것입니다.

세잔(Paul Cezanne)이 생 빅토와르(Saint Victoire) 산의 모습을 아침도 그려보고 점심도 그려보고 저녁도 그려보고 하는데 저는 저녁에도 그려보고 낮에도 그려봐도 아무도 주목을 안 해줘서 이것 참 서글프지만 혼자서 이렇게 엄청난 크기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벽의 반 정도씩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뮬라토 라고 그래서 우리는 흑인, 백인, 황인만 보고 자랐지만 이 뮬라토는 마치 진흙 색의 피부색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북 아프리카하고 스페인의 결합입니다. 너무너무 매혹적인 피부색깔인데 또 백인, 흑인 이렇게 있는 여성들입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경우에 특히 꼭 머리에 장신구를 꽂고 엄청나게 치장을 하고 아주 컬러풀한 옷을 입고 여성들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굴러다니는 자동차도 굉장히 컬러풀하고 색채가 마치 일용할 양식이라고 생각하듯 이렇게 칙칙한 검은 것을 입고 돌아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래도 유교적인 사회라서 색깔에도 금욕적인 요소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굉장히 밝고 화려한 색채를 좋아합니다.

그 다음에 이제 카페 문화입니다. 서구 유럽의 카페라고 하는 것은 이제 길거리에 의자들을 놓고서 차를 마시고 이런 것인데 여기는 연주가 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는 부류의 분들이 40, 50, 60, 70대 주로 이런 분들이 그냥 이렇게 담소 하다가 일어나서 연주하고 이런 모습입니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가지고 그렇지만 일반 보통 사람들이 이렇게 금새 노래하고 춤추고 이것입니다. 이것 저도 앉아 있으니까 자꾸 일어나서 춤춰보라 하는데 이게 습관이 되어야 말입니다. 그래서 있었더니 어떤 분이 저한테 와서 자꾸 춤 추자고 그러는데 괜찮다고 이렇게 했더니 뭐가 화가 났느냐?’ 화가 안 났는데 그 만큼 표정이 그렇게 무거웠었나 봅니다. 그만큼 정말 즐겁게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카페 토르토니라고 아르헨티나의 200년 된 문인 카페의 모습인데 정말 아르헨티나 가면 여기를 꼭 가봐야 된다고 하는데 별 것은 없었지만 어떤 예술가들이 왔던 장소라고 해서 사람들이 굉장히 애호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제 헤밍웨이, 쿠바의 자연의 시간, 미국의 자본의 시간, 문명의 시간에 이미 벌써 이 사람이 지쳐서 쿠바로 정신적인 피신을 오듯이 그래서 아바나에서 그렇게 잘 지내면서 핑카 비히아(la vigia)’라는 엄청난 별장을 마련해 놓고 거기서 낚시하면서 지냈는데 서른 두 살짜리 변호사가 체 게바라라고 하는 의사 청년하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이 분이 거기에 정신적으로 동조를 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혁명이 성공한 다음에 미국인 소계령이 내려가지고 자기 나라로 가서 얼마 안 있어서 엽총 자살을 했던 문인입니다. 이 분의 노인과 바다의 코이마르라는 어촌에 가서 느낌을 살려서 스케치해서 그려 본 것입니다. 이것은 체 게바라, 이것은 보카라고 하는 달 동네입니다.

이 것은 세계 5대 쇼 중의 하나가 명 쇼가 아바나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야외에서 주로, 우리는 공간, 건축물 안에서 하는데 야외에서 특설 링을 만들어 놓고 하는데 제가 갔을 때 카스트로 80회 기념 공연 이어가지고 정말 사람, 인문, 인간의 위주로 한 테크닉을 빼 버린 이런 쇼였습니다. 이제 멕시코의 선인장들과 유랑 악단들입니다.

이것은 이제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라고 하는 벽화가, 그의 아내입니다. 멕시코시티 외곽의 저 여성의 집입니다. 화가인데 멕시코의 역사를 한번 이제 그려본 것입니다. 토산물들, 가수들 입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라고 하는 곳에도 60, 70, 80대 정말 인생의 연륜이 녹아 있는 분들의 음악 팀입니다. 길거리 모습, 토르토니를 이제 이렇게도 한번 그려보았습니다.

이것은 피아졸라 탱고 극장입니다. 탱고라고 하는 게 한 때 로마 교황청에서 금지할 만큼 굉장히 불온한 춤이었다고 하는데 남녀가 이렇게 동작으로 얽히고 공간 상에서 시선으로 얽히면서 이별, 사랑, 그리움, 아픔 이런 것들을 다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처럼 소리가 없이 동작만으로 정말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데 남성 무용수는 60, 70대가 많고 여성 무용수는 젊은 분들이 많지만 남성 무용수들은 꽤 연세 든 분들이 많은 게 특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년 된 미켈란젤로 탱고 극장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 이렇게 탱고를 보는데 와인 한 잔씩 줍니다. 밖에 보니까 눈이 펄펄 내리는데 제가 눈물이 이렇게, 극단적 아름다움 앞에 이렇게 서면 사람이 눈물이 나온다고 그러는데 , 저 육체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육체가 만들어내는 저 선율이 저토록 아름답다니.’ 문학 청년 때 영혼은 위대하고 육체는 저열하다 이렇게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생각하기를 강요 받았는데 육체의 황홀한 아름다움, 저 아름다움이 결국 소멸하고 사라질 것에 대한 그런 마음 이런 것들이 엉켜서 정말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포레버 탱고라고 우리나라에도 왔었습니다. 이게 굉장히 일류 공연단입니다. 저도 그것을 서울에서도 봤는데 예술의 전당에서 했었습니다. 그 때 많이 자리가 비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는 택시 드라이버 탱고라는 게 있다는 데 관광 왔다가 탱고 극장 다니느라고 돈 다 쓰고 택시 기사가 되어 가지고 관광객에게 5분간씩 탱고를 가르쳐 주면서 탱고에 빠져서 탱고에 못 나오는 이런 부류가 있다고 할 만큼 매력적인 춤입니다.

카리브 해의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이게 실제 라기보다도 저렇게 바닷가에서 삶을 즐기고 사랑하고 하는 모습들을 그려 본 것입니다. 빈자의 동네를 내려다 보는 브라질의 이제 예수상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튀니지에 있는 카페 드 나트, ‘돗자리라는 뜻입니다. 화문석 돗자리처럼 생겨서 거기 앉아서 차 마시고 벽에 기대서 한 없이 담소하고 이런 데 인데 이게 앙드레 지드,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또 카뮈, 반 고흐도 왔다고 하는데 그것은 알 수 없고 생텍쥐페리 이런 분들이 많이 온 예술 카페다 해서 보니까 특히 폴 클레(Paul Klee)라고 하는 화가가 거기 창에서 계속 바다를 바라봤다고 하는데 단골 손님이 폴 클레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카페입니다. 여기는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심 직 합니다. 튀니지의 수도가 튀니스인데 튀니스 외곽에 있는 곳입니다.

튀니지의 북 아프리카에 대체로 사원들이 하얗게 이렇게 되어 있는데 문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 이슬람의 최고 권위자가 이희수 교수님인데, 터키만 100번 이상 다녀오신 분이십니다. 제가 어느 날 이 선생님께 이슬람의 상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그랬더니 초승달이 상징이죠’, ‘제가 느끼는 또 하나의 상징은 문 입니다했더니 처음 듣는데요합니다. 이슬람 권을 여행을 이란, 시리아, 요르단, 터키 쭉 돌면서 그렇다. 이 종교의 상징이 문이구나.’ 예컨대 그림으로 형상화 시키지 못하는 종교는 사멸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문양이나 그림이나 디자인화 되지 못하는 종교입니다. 경전이 아무리 심오해도 그러니까 어떤 문양화를 해서 일목요연하게 탁 이해시킬 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슬람은 문을 얼마나 아름답게 했는지 문을 통과하는 순간 이 세계와 다른 세계로 가는 어떤 중간자로 생각을 했지 않았나 합니다. 그래서 이슬람의 모습, 석양 입니다.

이것은 다른 지역이고 이것은 튀니지의 튀니지안 블루의 바다를 그린 것 같고 봄의 풍경, 저 부겐빌리아(Bougainvillea) 비슷한 꽃인데 하얀 담에 튀니스의 특히 저런 하얀 담에 파란 물에 그리고 이제 또 파란 색 지붕 해서 삼청의 나라 이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사막으로 가는데 악사들이 가끔 이렇게 있어서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음악을 연주해 주는 것 입니다.

여기가 이제 드 나트와 바깥 바다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슬람의 올리브가 또 마치 우리 김치처럼 다양한 올리브 밭이 많고 했던 모습입니다. 이제 양을 치는 목초지 따라서 모로코의 한 모습입니다. 전반적인 이슬람의 고혹적인 꽃과 바다와 그리고 올리브 농장들 이런 것을 한 화면에 분할해서 담아봤습니다.

이제 사하라입니다. 풍경을 제가 , , 으로 나눈다고 어딘가에 썼는데 , 정말 참 아름답다이런 풍경이 있고 , 정말 장엄하다. 놀랍다’, ‘하고 그 다음에 소리를 못 하는 입니다. 사하라도 세 번째 경우가 아닌가 싶은데 이 사하라를 가는 길이 굉장히 먼데 여기서 이제 낙타를 타고 캠플라자라고 하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현장을 가 보는 게 좋다, 좋겠다 싶은 게 저는 그냥 사막 그러면 죽어있는 이런 느낌으로만 봤는데 이것이 계속해서 바람이 있건 없건 한 15-20cm 간격으로 모래가 이동을 하면서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굉장히 부드럽고 우아한 형상. ‘English Patient’라는 옛날 영화를 보면 여기서 찍었습니다. 형상을 만들어 내는데 드문드문 하얀 뼈들이 있습니다, 낙타 뼈. 우리를 싣고 가려는 낙타가 우리가 타려고 하니까 얼마나 석양을 향해서 서럽게 울던지 폐부를 찌르는 낙타 울음입니다. 그래서 저녁 노을 속으로 가는데 저녁 노을도 주황색으로 어린아이처럼 탁 칠해 버리는 게 아니라 만약에 저한테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12가지를 해야만 현실에 방불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이제 캠플라자에 가서 1박을 하는데 , 여행을 떠나오면 여기서 와글대고 복닥거리던 나의 삶이 굉장히 객관화 되면서 제가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 이렇게 one of them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한 생명체구나그렇게 느낄 만큼 어마어마한 별들, 옛날에 저희 대학 때 별을 따다가 그대에게 담아드리리그런 노래가 있었는데 조금만 올리면 별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그러면서 휙휙 하고 유성이 떨어지고 은하수가 엄청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보면 무뚝뚝한 군인인 다윗이 쫓기는 그 순간에도 , 하고 감탄사를 부르면서 글을 쓰고 시를 쓰고 했던 게 이해가 될 만한 게 생텍쥐페리는 이제 조종사였습니다. 그 상공을 무수하게 날아 다녔을 것이라고 이제 추정을 하는데 그 밤에 신기하고 초현실적인 공간 속을 이동을 하면서 지상의 저 아래에 있는 저 삶에 대해서 다각도로 명상하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 왕자라고 하는 상상의 아이를 저 혹성의 하나에서 이렇게 끌어냈겠구나 했습니다. 완전히 초현실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이 없어서 발동기를 달아서 희미하게 불이 들어왔는데 갈대가 서걱대는 작은 오아시스인데 거기 야외 침낭에서 자는데 피곤해서 자는데 아침에 해가 이렇게 뜰 무렵에 뭔가 가느다란 비명이 들려 오는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비명입니다. 제 아내가 같이 갔는데 그 비명입니다. 제가 순간적으로 불 뱀에 물렸구나 그랬습니다. 이게 굉장히 새빨간 뱀이 요만한 게 사막을 빠른 속도로 다니다가 낙타를 한번 물면 쿵 하고 넘어지면서 즉사를 해 버립니다.

그 생각이 얼추 나서 보니까 그게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시뻘건 태양이 앞에서 이렇게 떠오르는데 옛날에 프랑크푸르트 학파 중에 아도르노(Adorno)라는 미학자가 있었는데 우리가 자연을 그리워한다, 사랑한다 하지만 인식되고 체험되지 못한 자연은 오직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라는 그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남산 좋아하는 것은 인식되고 체험되고, 관악산을 좋아하는 것도 인식하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노르웨이에 가서 고개를 하나 넘었더니 7월인데 물이 팍 눈 앞에 클로즈업 되면서 엄청난 얼음 덩어리들이 오는데 확 두려워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태양을 봤던 것은 원근을 놓고 봤고 했지, 저렇게 눈 앞에서 엄청난 크기의 태양이 바로 앞에서 이렇게 떠오르니까 사람은 그 앞에 조그맣게 서 있는데 그 붉은 태양이 순식간에 떠올라서 올라가는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그게 피가 막 튀기듯이 이래서 하루 더 있다 오고 싶었는데 그냥 왔는데 나와서 이제 시내로 나와서 한국에서 온 어느 교수 한 사람을 만나서 정말 장관이었다 하니까 그것보다 선생님이 참 대단하십니다그래서 왜요그러니까 거기 아무도 안 가는 곳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곳을 왜 안 가느냐했더니 20일 전에 캐나다인인가 호주인 인가 부부가 거기서 자다가 아침에 텐트로 무슨 막대기가 쑥 들어와서 봤더니 알카에다가 일어나라고 해서 서부 아프리카까지 끌고 가서 거기서 협상을 했던 악명 높은 캠프입니다. 어떻게 거기를 갔느냐? 보니까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하나가 하는 캠프인데 그것 참 왜 자연은 아름다운데 사람이 벌인 짓거리는 어쨌든 그렇게 되었지만 정말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물질적으로 빈곤한 바게트 빵하고 물하고,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다 프랑스 지배를 받았으니까 바게트 빵의 전통은 있습니다. 바게트 빵하고 물, 잘 해야 양고기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굉장히 사람이 종교적으로 되는 것 같습니다, 경건해 지는 것 같고. 술집 같은 것 이런 것 구경도 못합니다. 이런 데에서 우리가 아닌 다른 타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이제 오아시스, 오아시스가 이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물이 졸졸 흐르는데 이 생명의 젖줄 같은 물입니다. 우리가 여기도 물이 있는데 얼마나 물이 소중한가 하는 것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북 아프리카는 다시 가고 싶기는 한데 체력을 길러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컵라면, 햇반 이런 것 많이 가지고 갔는데 이제 한 달 이상 가니까 지쳐서 굉장히 힘든 여행이었지만 그러나 정말 원초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순수한 눈빛들 이런 것이 지금도 이제 뇌리에 남아 있고 아까 말씀 드렸듯이 계속해서 현장에서 글을 써서 이제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고 해서 사적인 여행의 비망록 혹은 일기장 같은 것인데 이게 책으로 이렇게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손자영 연구원 (jyson@ips.or.kr)